언론속의 국민

어느 누구도 대학에는 관심조차 없다 / 김도현(경영학부) 교수
박윤진 21.06.09 조회수 386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와의 혈투 1년 반, 그래도 이제 조금씩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상반기까지 1,300만 명 이상의 성인인구가 백신을 접종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고, 초·중·고 교사들에 대해 화이자나 모더나와 같은 mRNA 백신을 접종함으로써 2학기에는 각급 학교가 전면 대면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 경제지표들은 벌써 기록적인 상승 흐름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대책도 예측도 없이, 여전히 회복이 불투명하기만 한 분야가 하나 있습니다. 대학교육입니다. 교·강사들에 대한 백신 접종계획은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고, 대학생들은 젊다는 이유로 접종 순위에서 맨 뒤에 위치합니다. 설령 감염된다 해도 심각한 증세가 발현될 확률이 낮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대학생들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다면, 이들은 도대체 왜 일 년 반이나 대학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들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온라인 수업에 만족해야 하는 것은 사실 사회에 의해 강제된 희생입니다. 감염 취약계층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인적자원과 사회적 자본을 축적해야 할 기회를 내어준 것이지요. 하지만 이 문제에 주목하는 이들은 이상하게 적습니다.

 

초·중·고 대면수업을 얼마나 자주할지, 그리고 어느 학년이 더 많은 출석수업이 필요한지 갑론을박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고3과 초등 저학년은 현재도 매일 대면수업을 합니다. 전쟁 중에도 교육을 멈추지 않는다는 대한민국의 교육열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하지만, 이런 관심은 대학교육에는 닿지 않습니다. 늘 그랬듯, 대학에 관해서는 오직 입시제도만이 국민적 관심을 받을 뿐입니다. 그래서 지금, 대학교육현장은 비명없이 처참합니다. 경험이 부족한 교수와 대학이 비대면수업을 위해 나름의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캠퍼스에서 실험실습과 토론, 동아리 활동, 국제교류, 동료나 교수와의 깊은 대화는 더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흔히 말하듯 대학의 존재 이유가 다양하고 입체적인 경험을 통해 세계를 보는 넓고 깊은 사고능력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라면, 존재 이유 자체가 훼손되고 있는 중입니다. 등록금 반환 요구가 두려워 쉬쉬하고 있지만 학생들이 입은 피해가 평생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은 비밀이 아닙니다. 물론 이것은 사회적 손실이기도 합니다. 해외의 대학들이 감염위험을 견디면서도 교문을 열고, 학생들에 대한 백신접종을 최우선순위에 둔 것은 제법 합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백신 접종 우선순위를 앞당기고 싶다는 투정이나, 비대면수업에 부적응한 꼰대의 한탄은 아닙니다. 저는 다행히 잔여백신을 맞았고, 비대면수업으로 인해 가능해진 재택근무는 교수들에게도 아주 달콤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다음 학기조차 아무 대안 없이 현재와 같은 교육이 지속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직업적 책무감이 저를 괴롭힙니다. 백신수급상황으로 볼 때 3분기 접종일정을 조금만 조정하면 8월 말이나 9월 초까지 대학 구성원들에 대한 백신접종은,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그래도 빈약한 재정 탓에 우리나라 대학들의 세계적 경쟁력이 지속적으로 퇴보하고 있는 요즘, 경쟁국가 가운데 우리나라만 비대면 대학교육이 2학기까지 이어지는 망신만큼은 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관계당국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