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제법 어려운 질문/김도현(경영학부) 교수
서유리 19.03.27 조회수 684

 

경영학과 교수들이 학부생들을 괴롭힐 작정으로 던지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기업 의사결정의 기준이 될 이해관계자, 이른바 기업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어디에선가 배운 대로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라고 씩씩하게 대답합니다. 선생들이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주주의 이익을 위한다고 오래 일한 직원들을 마구 해고해도 되나?” “위험한 제품을 팔아서라도 주주의 배당을 키워야 하나?”하는 어려운 질문을 퍼붓습니다. 고약합니다. 간단히 답할 질문이 아니지요.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뿐 아니라 다양한 관계자를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과 주주만이 중요하다는 믿음은 늘 충돌합니다. 하지만 친절한 표정으로 “여러 주주 중에 어떤 주주?”라고 슬쩍 되묻는 선생이라도 얕잡아봐서는 안됩니다. 이 역시 현실에 부닥히면 복잡하게 엉킬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주총 시즌에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대한 관심이 높았습니다. 많은 상장 기업에서 최대 주주와 다른 주요 주주 간에 의견이 다를 경우 국민연금의 입장이 결정적인데, 현대자동차, 한진, 삼성 등에서 이런 상황이 연출되었기 때문입니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은 현대자동차의 주주총회에서 파격적으로 높은 배당과 외국인 임원 선임을 제안하면서 이것이 최대 주주가 아니라 다수 주주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따라서 국민연금이 자신들의 제안에 동참하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단기적인 주가 상승을 지향하는 이들 펀드들은 한편에서는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훼손하는 사냥꾼들이라고 공격받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주주 이익의 옹호자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특히 일부 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최대 주주의 사익 추구 행동, 이른바 터널링 현상이 화제가 될 때 행동주의 펀드의 입지는 단단해집니다. 아쉽게도 이런 펀드가 실제로 기업들에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학계의 연구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부 행동주의 펀드와 달리 최대 주주와 경영진이 더 옳은 의사결정을 하도록 함께 고민해서 장기적으로 모든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도록 돕는 투자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실 비상장 기업의 경우에는 잘 알려진 좋은 사례가 많습니다. 아마존이나 구글 등의 초기투자자로 잘 알려진 벤처캐피털인 클라이너 퍼킨스는 이들 기업이 아주 긴 시간 적자를 보는 상황에서도 창업자들을 격려하면서 추가 투자를 지속했습니다. 명성 높은 벤처캐피털이나 사모투자회사들은 이처럼 피투자회사의 이사회에 참여하여 최대 주주와 경영자가 겪는 어려움들을 친구처럼 돕는 한편, 적절하지 않은 행동은 단호하게 견제하곤 합니다.

지난 2월,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미국의 자산운용사인 달튼인베스트먼트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좀 더 나은 경영 성과를 창출할 여지가 크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담은 공개 서신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서신에 국내외 여러 투자회사들이 속속 동참하면서 자본시장에는 작은 파문이 일었습니다. 이들은 기업들에 단기 배당을 요구하는 대신, 보다 전략적인 자본 배분 활동에 주력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경영진이 잘못된 의사결정을 반복하는 기업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국민연금의 주주권이 장기적인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행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장기적 가치 상승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기존의 행동주의 펀드들과는 크게 구분되는 태도입니다. 오히려 해외 주요 벤처캐피털들의 관점과 닮았습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우호적인’ 행동주의라고 해야 할까요? 특히 참여한 투자회사들이 장기 가치투자를 표방하는 젊은 펀드매니저들이 주도하는 기업들이라는 점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우리나라 상장기업들이 드디어 친절하고도 따끔한 투자자들을 만나게 된 것일까요? 그들에게 문을 열어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이것도 제법 어려운 질문이군요.

출처: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3261052052893?did=NA&dtype=&dtypecode=&prnews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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