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의 서재

Episode 17. 박종기 교수님 (문과대학 국사학과)
조영문 11.08.08 조회수 23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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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책 이야기 Title Bar

나에게 서재는 생산기지다

저에게 서재는 일종의 생산기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서재에서 강의와 저술을 위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와 가치를 창조해 나가려 노력하지요.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저에게 있어서 지식과 가치의 생산기지라 말할 수 있다. 저는 집이나 바깥보다는 연구실에서 주로 생활합니다. 국민대학에 온지 27년이 되었는데 그동안의 모든 생활이 대부분 연구실에서 이루어져왔습니다. 그래서 물론 단순한 생활공간일수도 있겠고, 하지만 더 큰 의미로는 역사학자로서의 지식과 가치를 생산하는 생산기지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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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욕심 가득했던 소년

제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것이 1950년대 후반쯤입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책이 많지가 않았어요. 당시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면서 겨우 책을 접할 수 있었지요. 모세 다윗의 이야기와 같은 성경이야기, 그리고 동화를 많이 들었고. 그것에 대한 깊은 호기심이 결국 저에게 상당한 독서 욕구를 키워주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독서에 대한 욕구가 더 커졌어요. 그래서 책을 마음대로 대출할 수 있도록, 도서부원으로 일했어요. 학창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책과 함께 보냈죠. 즐겨 읽었던 문학전집이나, 사상계와 같은 잡지가 저의 감수성을 자극했고 그 과정에서 역사학자로서의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두 가지의 독서

독서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는 강의를 위해, 혹은 저술을 위해 필요한 독서, 즉 일종의 의무감에서 시작하는 독서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유롭게 스스로가 읽고 싶은 책에 대한 독서가 되겠죠. 강의나 독서를 위해서 읽는 책 역시 중요하지만 자유롭게 읽는 독서가 훨씬 새로운 상상력을 북돋아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 일본인 여성사 연구가 홈마 야스꼬가 지은 덕혜공주란 책은 제가 생각지 못했던 덕혜공주의 개인적인 삶은 기록했지요. 굉장히 상상력을 자극했던 독서였습니다. 중앙일보에 연재되었던 백선엽씨의 한국전쟁이야기도 역시, 새로운 역사소재로 이용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했습니다. 이처럼 자유로운 독서가 훨씬 의미를 주는 것이더군요. 이 독서에서 얻는 기대감들은 제게 새로운 버릇을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잠깐 외출을 할 때, 최소한 신문이나 잡지하나라도 들지 않으면 불안하게 되어버린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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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독서, 10년 저술, 10년 여행

처음에 역자학자의 길에 들어섰을 때 집필에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30년 정도의 역사학자의 길을 걷다보니 단독으로 5권, 공동 책 6권 정도를 저술하게 되었지요. 지금 보면 저걸 어떻게 썼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것은 사실 단순한 노동의 강도로써 이야기 할게 아닙니다. 창의력과 창조력이 없었으면 쓸 수 없었다는 것이죠. 따라서 생산되는 저술들은 기본적으로 나의 충실한 독서, 거기서 나오는 상상력을 통한 새로운 지식과 가치관이 융합되어 나온 결과물이라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그래서 역시 학생들에게도 탄탄한 독서가 필요하다고, 그것이 한 인간의 세계관을 창출한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30년이 되어야 역사가로서 참다운 맛을 낸다고 이야기합니다. 10년 독서, 10년 저술, 10년 여행 삼십년이 되어야 진정한 역사가가 된다고 하죠. 저도 30년 역사 공부를 해보니, 역시 이 세 가지가 겸비되지 않으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없는 생각이 들더군요.

독서는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다

독서. 여행, 즉 역사가들에게는 답사. 그리고 또 집필, 글을 쓰는 것. 이 세 가지는 같은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독서와 여행, 그리고 집필이라는 것은 스토리텔링,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것이 바탕이 되기 때문이지요.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이 세 가지는 상상력의 원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그러한 상상력이야 말로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밑거름이 되지요. 스토리텔링은 단순히 수다스러운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만드는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 가지 중에서도 유독 독서를 강조할까요. 여행이나 집필에는 돈이나 시간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개방된 독서에 우리는 비교적 쉽게 접근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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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하고 싶은 두 권의 애장서

제게는 자랑하고 싶은 책 두 권이 있습니다. 애장서 라고 할까요. 먼저 안정복의 동사강목 고려사 수택본입니다. 한 학생이 80년대 후반에 미아리 책방에서 주워와 저에게 필요할 것 같다며 선물해 주었지요. 제가 고려사를 공부한다는 것을 알고 그랬나봅니다. 그 책을 받아들고 천천히 살펴보니까 도장이 찍혀져 있었습니다. 굉장한 책이었지요. 이 책을 얻게 된 것을 계기로 나머지 한권의 수택본의 소재를 찾기 시작했고, 결국 서울대 규장각에서 찾아내었습니다. 그 과정을 제가 고스란히 기록한 책이 안정복, 고려사를 공부하다, 이죠. 나머지 한권은 권근의 양촌집. 조선사 편수회본이었습니다. 이 역시 굉장한 귀중본이었죠. 제가 이 책을 인사동 책방에서 발견한 뒤 몇 달을 아르바이트 해서 갖게 되었지요. 대학시절 때 등록금이 4만원이었는데. 이 책을 딱 4만원에 구입했습니다. 당일 기쁨에 책 앞에다 '1974년 10.28일 비가 온다는 짧은 메모도 적어보았었죠.

새로 쓴 5백년 고려사

저술서 가운데 '새로 쓴 500년 고려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쓴 책 중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구어체로 되어 있습니다. 이야기 식으로 쓰여 있지요. 종래의 교과서와는 상당히 다른 형식이었죠. 책을 쓰는 시기에, 저는 학생들에게 강의를 할 때 녹음기를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두 학기 정도를 평소에 강의하는 내용을 녹취해서 그대로 기록했었죠. 또한 이 책은 천 년 전의 역사에 대한 것이지만, 과거와 현재를 일체시키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역사서 중에서는 베스트셀러로도 꼽히죠. 책을 쓰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저는 역사책이 어렵고 딱딱하며 재미없다는 관념을 깨트리고 싶었습니다.

내 평생의 꿈, 역사의 대중화

꿈이라는 것은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현재이자 이제껏 걸어왔던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부터 저는 역사연구의 중요한 목표를 역사의 대중화에 두었습니다. 한국의 5000년의 역사를 일반 대중들과 나눌 것을 꿈꾸었죠. 그렇게 대중적인 역사서를 쉬지 않고 쓰는 게 꿈입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형식의 역사서를 쓰고 싶습니다. 이제는 독자층의 범위를 조금 넓혀서 어린이들을 목표로 저술해 보고 싶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동화를 보며 상상력을 키웠던 것처럼, 어린이들이 저의 역사 이야기를 재밌고 쉽게 읽으며 꿈을 키우면 좋겠습니다. 역사의 대중화, 그것이 바로 저의 과거의 꿈, 그리고 현재의 꿈이자 앞으로도 이루어 내고 싶은 꿈입니다.

내 인생의 책 Title Bar

 

 

 

추천 책 Cover 임종국
친일문학론 ㅣ 임종국 ㅣ 평화출판사 ㅣ1966년 | 성곡도서관 링크

역사공부를 시작한 대학 초년 시절의 저에게 커다란 충격을 던져준 책입니다. 일제하 친일파의 행적을 실증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서적이죠.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제도 위주의 역사, 현재와 단절된 과거 중심의 역사에서 탈피하여 인간과 사회를 중시하는 역사연구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추천 책 Cover 논어와 맹자
공자, 맹자 ㅣ 홍익출판사 ㅣ2005년 | 논어 성곡도서관 링크 | 맹자 성곡도서관 링크

학부시절 한문공부를 위한 교재로서 접했으나, 지금은 저에게 역사와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키워주는 훌륭한 살아있는 교과서입니다. 맹자는 각 분야의 지도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경륜과 치세의 철학이 담긴 책입니다. 논어는 타인과 공동체 등 타자에 대한 배려와 자기의 수양에 필요한 덕목을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추천 책 Cover 돌베개
장준하 ㅣ 이출판사 ㅣ 1978년 | 성곡도서관 링크

일제하 학도병으로 징집되었다가 탈출, 임시정부 귀환, 광복군에서 해방 이후의 활동에 이르기까지의 사실과 역사를 기록한 일종의 자서전입니다.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저자의 혼이 담긴 빼어난 문체가 돋보이죠. 조국과 민족 및 역사의 진실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해준 책입니다. 1970년대 후반 대학원 시절의 애독서였습니다.
 
추천 책 Cover 백범일지
김구 ㅣ 돌베개 ㅣ 2005년 | 성곡도서관 링크

현재 이 판이 가장 충실합니다. 민족지도자 백범 기구의 자서전. 역사 앞에서 진솔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우치게 한 책입니다. 학부시절에서 대학교수 때까지 여러 번 읽은 책이기도 합니다.
 
추천 책 Cover 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 | 와이비엠시사편집부 ㅣ 와이비엠시사 ㅣ 2001년 | 성곡도서관 링크

1960년대 초반 영국에서 발행되었습니다. 현재 여러 출판사의 번역판이 나와 있으나, 길현모 교수가 번역한 탐구신서의 번역본이 가장 훌륭하다는 생각입니다. 학부에서 대학원 시절, 그리고 현재의 교수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나의 역사연구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몇 년 전 까지도 학생들과 수업 중에 함께 읽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