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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꿈·욕망을 디자인한다…팔리지 않으면 낭비" / 스테파노 지오반노니(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최윤세 18.07.27 조회수 5316


사진설명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전시장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래빗 체어에 앉아 있는 스테파노 조반노니.

"자재 창고에 쌓여 있는 몇 천개 스틸 부품과 플라스틱 재고로 의자를 만들어봐."

1996년 이탈리아 가구 회사 마지스에 다니던 디자이너 스테파노 조반노니(66)는 상사로부터 어려운 지시를 받았다. 흔한 가구 소재인 가죽이나 천은 없었다. 고심 끝에 조반노니는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의자 `봄보 스툴(Bombo Stool)`을 만들었다. 잘려 나간 와인잔처럼 생긴 플라스틱 의자로 등받이가 없다.

이듬해 출시한 이 가구는 할리우드 SF 영화 `스타워즈`와 `로스트 인 스페이스` 소품으로 등장해 대박을 쳤다. 그 덕분에 마지스는 플라스틱 가구의 대명사로 거듭났다. 지난 24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만난 조반노니는 "영화 후광 효과 덕분에 미래지향적인 가구, 모더니즘의 아이콘이 됐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봄보 스툴 판매액은 6600억원이 넘는다. 그가 디자인한 일본 브랜드 TOTO의 오동통한 변기 역시 매출액 1조 7000억원을 올린 히트 상품이다. 그는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선뜻 구매할 수 있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팔리지 않는 디자인은 낭비이며 무의미해요. 저는 사람들에게 널리 쓰이는 물건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디자인하죠. 디자인은 돈이에요."

제품 특징을 정확하게 표현하면서도 고객과 소통하는 디자인 덕분에 산업 디자인업계 거물이 됐다. 베이커리 브랜드 파리바게뜨 일회용 컵 `파리지앵컵`, 알레시-지멘스 유선전화기, 중국 통신장비업체 ZTE 스마트폰 누비아Z5, 삼성-구글 TV 라이트닝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2년 전에는 직접 디자인 회사 퀴부(Qeeboo)를 설립해 예술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다.

"모든 고객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민주적인 디자인을 지향해요. 하지만 구매욕을 자극하면서도 감성을 건드려야 하죠. 가구회사 이케아나 패션 브랜드 H&M은 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드는데, 예술가는 하나 더 해야 합니다. 더 신나고 특이한 디자인으로 정체성을 보여줘야 해요. 집에 뒀을 때 나를 설명해주는 가구와 옷을 만들어야죠. 사람들의 꿈과 욕망, 상상력을 디자인해요."

DDP M배움터 디자인전시관에서 열리는 `루나파크전 : 디자인 아일랜드`에서 그의 디자인 철학을 확인할 수 있다. 알레산드로 멘디니, 필리프 스타르크, 하이메 아욘, 에에로 아르니오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 100여 명 작품을 펼쳐놓은 전시다.

조반노니는 "내 디자인 언어와 방향이 비슷한 디자이너들을 모았다"며 "구체적인 형상을 살린 우리 디자인은 미니멀리즘이 주름잡았던 1980년대에 키치(싸구려)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지금은 어린이까지 좋아하는 디자인 대세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토끼 형태 의자 `래빗 체어`와 킹콩 램프 `콩`이 전시됐다.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대학 정원에 조명을 든 분홍색 `콩` 2개 사이에 분홍색 래빗 램프 12개를 줄지어 세워 화제가 됐다. 지난해에는 중국 쯔진청 다리에 흰색 래빗 조명 500개를 설치하고, 상하이 패션의 거리에는 래빗 조명 1000개를 배치해 장관을 연출했다.

"토끼 귀에 기대어 앉으면 편해요. 20년 전에는 귀를 들면 이쑤시개가 나오는 통을 만들어 히트를 쳤죠. 제 디자인 제품들이 잘 팔려 영광이지만 중국에서 너무 많은 모조품이 나와요. 여러 대응 방법을 써봤지만 속수무책이죠."

조반노니는 플로렌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지만 산업디자인을 선택했다.

그 이유에 대해 "건축은 정치여서 개인주의적인 내 성격에 맞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는 2015년부터 국민대 테크노 디자인 전문 대학원 석좌교수로 임명돼 특별 강연을 열고 있다. 한국 학생들에 대해 "잠재력과 가능성이 많다. 빨리 이해하고 결정하며 뭘 아는지 정확하게 말해준다"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6일까지.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8&no=468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