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조형인 인터뷰
“내가 내 디자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주변에서 피드백을 받았을 때 그 피드백이 틀렸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잘 알고 있고, 설명을 해야 해요. 그 프로젝트에서 주인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편집권은 그 주인에게 있죠. 주변 피드백에 무조건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자신감 있게 틀렸다고 생각하면 아니라고 판단하고 그것을 기분 나쁘지 않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요.”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를 2006년에 졸업한 98학번 송봉규라고 합니다. 현재 BKID 제품 스튜디오를 운영 중입니다.
국민대 조형인으로 선정되셨어요. 기분이 어떠신가요?
사실, 졸업하고 나서 학교에 대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후배들을 만날 기회였고, 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졸업했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좋은 기분이었던 것 같아요.
학부생 시절의 고민과 꿈꿨던 진로가 무엇이었나요? 또 현재의 진로와는 다른 부분이 있을까요?
솔직하게 3학년까지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당시 제품 디자인을 하는 게 더 보편적으로 했었던 흐름이었고, 노는데 정신이 없었고 휴학도 많이 했었는데, 거의 학년마다 휴학했던 것 같아요. 프로 휴학러죠. (웃음) 학생이니까 아르바이트도 많이 하고 유럽 여행도 다녀왔어요. 4학년 되고 나서는 졸업 전시 준비를 해야 하고 취업에 대한 생각을 가졌었고, 운 좋게 디자인 멤버십을 하면서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기업에 취업하는 것 외에도 다른 진로가 있는가 생각해 보면 그때 잘나가던 해외 스튜디오가 했던 인터뷰 칼럼들을 보면서 인 하우스보다 스튜디오가 더 멋있어 보이고 결과물도 좋아 보였어요. 학부생 때는 스튜디오를 차릴 여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 하우스에서 경험을 쌓다가 기회가 되어서 스튜디오를 차렸죠.
진로를 굳히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학부생 때는, 사진 찍는 게 좋아서 사진을 찍기도 했고, 세트장 알바도 많이 해봤고요.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거기서 몇 개를 배제하고 그중에서 제품이 오랫동안 제가 재밌게 할 것 같아서 선택했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것들을 보면서 멋있다는 생각도 했고요. 제품 디자인을 잘하는 게 멋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일을 선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기억에 남는 수업이나 학교생활이 있나요?
그때 당시 현재보다 아날로그 스타일의 수업이 많았어요. 직접 샤프로 그리거나 렌더링, 목업도 다 손으로 직접 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6시, 12시 리플랙션이라고, 12시 정오는 대비가 강하고, 6시는 노을이 지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렌더링 기법을 다르게 표현하는 기법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수업들 덕분에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것도 있어요. 사제동행 세미나라는 수업도 있었는데, 학생들끼리 그룹을 지어서 필드에 나가 계신 선배들을 만나는 수업이었죠. 대우, 삼성, 엘지와 같이 기업에 취업하신 분들, 스튜디오를 차리신 분들을 만나면 저희가 배우는 것과 전혀 다른 걸 하고 계시니까 신기하고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이런 수업들로 외부에서 어떤 방식으로 디자인하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기억에 남는 수업은 사진 수업이었는데, 되게 재밌었어요. 사진 동아리도 있었는데 부원들이랑 여행 갔던 거나 놀고 고민 없이 돌아다녔던 게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요. 사실 학부생 시절 중에 디자인 한 건 기억이 잘 안 나는 것 같아요. (웃음) 사실 학교에서 듣는 수업들은 저희가 직접 필드로 나가기 전의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해요. 학교 수업보다는 외부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어떤 것을 하고 그 사람이 보여주는 내용들이 더욱 의미가 깊고 기억에 잘 남습니다.
스튜디오 BKID에 대해서 궁금해요. 현재 진행 중이거나 애착이 가는 프로젝트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BKID는 제 이름의 이니셜을 따서 지은 스튜디오예요.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BMW랑 했던 차량용 충전기인데, 그때 BMW에서 전기차를 처음 출시하고 몇 개월 내로 독일에서 한국으로 차 수십 대를 들여올 예정이었어요. 차는 많이 있는데 주유소가 없는 상태였죠. 한시라도 빨리 충전기가 필요한 상황에서 짧은 시간에 충전기를 제작까지 하고, 고객들에게 자동차가 배송되기 전까지 설치가 되어있어야 했어요. 당시 4~5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었는데, 그 프로젝트에서 BMW가 저희 디자인을 굉장히 신뢰했던 것 같아요. 자동차 디자이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조형적인 부분 등을 잘 해석해서 디자인했다고 평가받았기 때문에 가장 애착이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BKID에서는 디자인 작업을 할 때 특정한 프로세스를 따라가는 편인가요?
따로 정해진 프로세스라기보단, 프로젝트마다 잘 완성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따로 정립 해요. 예를 들어 프로토타입을 프로젝트 초기부터 많이 만들어봐야 하는 프로젝트가 있고, 제품의 형태보다는 리서치가 많이 필요한 프로젝트가 있죠. 처음 의뢰 받으면 프로젝트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얘기를 나누는 편이에요. 정해두고 행동하다 보면 필요 없는 프로세스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지키려고 하면 낭비가 될 수 있어요. 보통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직관적으로 풀어나가는 것들을 잘 신뢰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학교 수업에서는 직관보다는 논리에 맞춰 진행하려고 하는데 둘 다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고, 때로는 직관에서 오는 방식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순간마다 오는 직관을 들여다보고 설명할 수 있는 논리적인 부분도 고민해 볼 수 있어야 해요. 디자인하다 보면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에 직관이 좋은 것 같아요.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방법도 중요하기 때문에, 직관과 논리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죠.
앞으로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요?
저희가 곧 전시하려고 하는데, 전시 이름을 ‘appendix’라고 지었어요. 부록이라는 뜻인데, 어원이 맹장으로 소화기관에서 중요하지 않지만 보조해 주는 역할을 하는 부분이라고 하더라고요. 큰 틀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은 아니지만 전체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보조해 주는 아이디어들을 ‘appendix’로 분류해서 전시할 계획이 있습니다. 또 지금까지 저희가 했던 수많은 디자인 중에서 스위치, 청소기, 조명, 의자 가구 등등 다양한 제품이 있는데, 나중에는 저희가 디자인한 것들을 둘 수 있는 스테이를 만들어 볼 생각인데, 스테이에서 저희 제품들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우리가 디자인해 보지 않은 제품이 되게 많은 것 같더라고요.
디자인 작업에서 중요하다고 느끼는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되시나요?
학부생 시절엔 디자인이 전부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되게 일부인 것 같아요. 일을 하다 보니까 제품이 작동되게 하려면 좋은 기획과 자본가, 소비할 수 있는 소비자, 시장부터 서비스 같은 것들이 필요한데 그곳에서 디자인의 역할을 따지다 보니 생각해야 할게 매우 많고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더라고요. 점점 디자이너의 포지션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어요. 따라서 다른 제품들, 역할들 사이에서 똑같은 기능이더라도 감동을 줄 수 있는 디자인, 감각적인 부분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해요.
디자인에 있어서 감각적인 부분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기 위해선 예민해야 해요. 디자인의 허용, 비허용에 대한 예민함. 예를 들어, 요리가 맛있는 요리사는 그 요리에 대한 예민함을 가지고 있기에 잘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필드에 나가면 저에게는 피드백 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 상황에서 자기 객관화나 까다로움으로 헤쳐 나갔던 것 같아요.
스스로 자신의 과제에 대해 평가해본 적 있나요? 다른 곳은 좋은데 이런 부분이 아쉽다거나, 더 발전시켜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처럼, 그 감각을 잃지 않고 발전시키려면 자기 디자인에 대해 피드백하는 것도 중요해요. 저는 교수님 피드백을 받았을 때 이해가 안 될 때가 종종 있었어요. 내가 내 디자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주변에서 피드백을 받았을 때 그 피드백이 틀렸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잘 알고 있고, 설명을 해야 해요. 그 프로젝트에서 주인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편집권은 그 주인에게 있죠. 주변 피드백에 무조건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자신감 있게 틀렸다고 생각하면 아니라고 판단하고 그것을 기분 나쁘지 않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요.
기업에서 스튜디오 창업까지의 일화에 대해 들려주세요.
졸업하고 처음엔 기업에 들어가서 일을 했어요. 그 기업에서 월급이 나오고, 그 월급을 모아서 스튜디오를 차리게 됐는데요, 처음엔 월급의 2~30%를 투자하기로 마음먹었죠. 마음이 잘 맞는 주변 친구들과 스튜디오를 빌려서, 퇴근하면 디자인하고 이야기하며 놀곤 했어요. 새벽까지 디자인하고, 또 출근하고, 주말에는 하루 종일 있었는데 이걸 3년 정도 반복했어요. 나중엔 회사에 다니면서 포트폴리오도 만들어서 올려봤고, 그러자 외국에 있는 몇 개의 스튜디오에서 일을 맡기기 시작했어요. 동시에 하는 게 가능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하게 되었는데, 결과가 좋았고 점점 다른 곳에서도 일이 들어왔죠. 회사에서 번 돈보다 그 일을 해서 번 돈이 더 많아질 때쯤 퇴사하고 본격적으로 이 일을 시작했어요. 옛날엔 SNS가 없어서 작업물들을 주로 웹사이트로 올렸어요. 해외 디자인 웹진 같은 곳에서 제 작업물이 소개되면 한국에서 기사를 싣고 제 작업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죠.
기업과 스튜디오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기업에서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었어요. 불만도 있었고요. 그 당시에 저는 자기 객관화가 되어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회사에서는 상사와만 업무를 주고받고 얘기를 했었는데, 스튜디오에서는 외부 클라이언트의 높은 분과도 얘기를 할 기회가 많았죠. 편견 없이 잘 들어주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디자인 스킬, 퍼포먼스, 커뮤니케이션은 다 같은데 인 하우스에서는 단지 사원, 막내의 시각으로 바라봤다면, 외부와 일을 할 때는 오로지 포트폴리오로만 접근했었고 나이나 경력을 신경 쓰지 않고 좋게 바라봐 주었어요.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졸업생으로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요? 사회에서 국민대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어떤가요?
보통 실무에서 학교를 내세우진 않지만, 만나서 일을 같이하면서 잘한다고 생각되면 국민대 학생인 경우가 많았어요. 일화가 있는데, 재활용 플라스틱의 재료에 대해 궁금해서 ‘노 플라스틱 선데이’라는 브랜드에 연락해 협업했었어요. 알고 보니 대표님이 금속공예학과를 졸업하셨더라고요. (웃음)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다양한 분야로 뻗어 나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다시 학부생으로 돌아간다면, 계속해서 공업 디자인학과를 전공하실 건가요?
현재로서는 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시간이 더 지나 봐야 알 것 같지만 제품과 연결된 다른 것들을 경험해 보고 싶어요. 그때 당시 건축과도 있었는데, 요즘 관심사는 건축이라서 지금 다시 돌아간다면 공업디자인을 전공하면서도 건축과 쪽에 기웃거려 볼 것 같아요. 그리고 종합예술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조각을 공부해 보면 재밌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학부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휴학도 많이 해보고, 학교생활 외에도 재밌는 것들을 찾아보고 다양하게 경험해 봤으면 좋겠어요. 교수님이 알려주시거나, 해보라고 하기 전에 본인들의 순수한 호기심과 관심사를 찾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기준은 그것 때문에 다른 일을 생각하지 않거나, 지장이 갈 정도로 빠져들어서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진짜 좋아하는 걸 찾게 되면 푹 빠져버릴 정도로 해보았으면 좋겠어요. 학부생 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자유롭게 시도해 보라고 얘기하고 싶네요.
조형인 : 송봉규, 스튜디오 BKID 대표
공업디자인학과 재학생 : 김슬기, 이승연, 홍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