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조형인 인터뷰
“많이 경험하고 내 작업과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 판단하는 습관이 만들어져야 수많은 정보
사이에서 좋은 인사이트를 도출해낼 수 있어요.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디자인이 왜 좋은지 설득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해요. 실무에서 엔지니어들에게 설득하려면 논리적으로든 감성적으로든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03년도에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99학번 김수연입니다. 졸업 직후에 LG 전자에 입사하여 현재까지 가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작년 ‘조형인 선정’ 때 조형인 7인 중 한 분으로 선정되셨는데, 상을 받으셨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처음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을 뽑는 줄 알았는데(웃음), 설명을 들어보니 현재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선정했다는 걸 알게 되어서 기분 좋았죠.
선배님의 학교생활이 궁금합니다. 선배님의 학부생 시절 꿈꿨던 직무는 무엇이고, 그것이 현재 하시는 업무와 일치하시나요?
제가 공업디자인학과를 졸업했지만, 인테리어나 공간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제가 졸업했을 당시에 LG 전자가 가전을 잘 다루는 회사였기에, 가능하다면 LG 전자에서 가전제품을 디자인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휴대폰 시장이 막 커지던 시기여서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휴대폰 기기, PC 제품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휴대폰 같은 작은 미디어 제품보다는 실제 매일매일 쓰는 제품, 공간에서 접할 수 있는 가전제품을 하고 싶어 이 진로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학부생 시절 하셨던 활동 중에서 지금까지도 도움이 되거나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나요?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우주 다트’라는 사진 동아리랑 ‘제퍼스’라는 제품 동아리 활동을 했었어요. 사진 동아리에서 선배들이랑 출사 가서 놀러 다녔거든요. 우리 학과가 국민대학교에서 인원이 적은 과이기도 하고 선후배 간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특성이 있었는데, 이런 동아리 활동을 하며 선배들이랑 매우 친해졌던 것 같아 기억에 남습니다. 학교 수업 중에서는 <발상과 표현>이 기억에 남는데, 이 수업을 통해서 하나를 깊이 관찰하는 습관을 길렀던 것 같아요. 다른 제품 디자인 수업에서도 제품을 디자인할 때의 프로세스를 처음 알게 되고, 깊이 배워서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LG 전자 디자인 경영센터에서는 어떤 업무를 하는지 소개해 주세요.
LG 전자에는 사업에 주체가 되는 본부들이 있습니다. H&A(Home Appliance & Air Solution), HE(Home Entertainment), BS(Business Solutions), VS(Vehicle component Solutions) 사업본부가 있는데, 각 본부는 그 본부에 대응하는 디자인 연구소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 중에서 H&A 본부 디자인 연구소에서 세탁기, 에어컨 등 모든 생활가전 제품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H&A(Home Appliance & Air Solution) 디자인 연구소에서 선배님께서는 어떤 업무를 하고 계시나요?
저는 H&A 디자인 연구소에서 전체 프로젝트를 총괄하여 지휘하고 있습니다. 각 제품 프로젝트의 아이덴티티를 관리하거나, 전체 디자인을 조율하고 일관된 디자인 철학을 만들어 각 제품 디자이너들이 동일한 접근을 할 수 있게 돕습니다. 또, 기존에 하지 않던 제품들을 연구하는 선행 디자인 업무도 맡고 있습니다.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 가장 애착이 가는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제가 상무로 임명된 이유이기도 한 프로젝트인데, 빌트인 패키지라고도 하는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프로젝트가 제일 애착이 갑니다. 보통 인하우스 디자이너들은 상품 기획팀이나 영업팀에서 의뢰를 받아 디자인해요. 이 프로젝트는 디자인 부서에서 먼저 ‘이런 제품에 이런 가치가 필요하다.’ ‘이런 디자인을 출시했을 때 어떤 시장을 창출해 낼 수 있다’ 이렇게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저희가 주도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여서 훨씬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라인을 발의하셨을 때 많은 설득이 필요하셨을 것 같아요. 그 조율 과정이 어땠습니까?
굉장히 오래 걸렸죠. 지금도 본부 안에 제품마다 사업부가 나누어져 있어요. 조형대학 안에 공업디자인학과가 있는 것처럼 H&A 본부 안에 냉장고를 하는 Kitchen Appliance 나 세탁기를 하는 Living Appliance 등 나누어져 있는데, 부서마다 추구하는 기본 가치와 니즈가 달라요. 비슷해 보이지만 제품마다 구조나 소재가 다 다르거든요. 냉장고는 온도나 내구성에 강해야 하고, 오븐이나 식기세척기는 세제와 열에 강해야 하고. 그런데 각 제품에 사용하는 구조나 소재를 맞추려면 개발에 투입되는 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시점이 생겨요. 그럴 때마다 사업적으로 이득이 되고 디자인적으로도 임팩트가 있는 그 조율점을 찾는 과정이 엄청 힘들죠. 설득해야 하고 싸우기도 하고 부탁하기도 하며 지금도 디자이너들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대기업이다 보니까 직급이 존재하니 상사들을 설득하는 데에 어려우셨을 것 같은데요?
최소 부사장님들을 설득해야 했어요. 그래도 일할 때는 각자 역할이 그들은 사업, 개발 분야이고 저희는 디자인 분야로 다르니까 계속 설득하며 조율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싸워서 힘들게 개발한 제품들이 시장에서 잘 팔립니다. 다행히 H&A 본부는 성공한 사례들이 많아 기업에서 잘 수용되는 편입니다. 기업이 크고 조직이 많을수록 성공 체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엄청 많아요. 제가 처음 인턴을 시작했을 때도 공간에 녹아드는 가전을 하고 싶어 했고,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것이 그거예요. 예전에는 냉장고면 냉장고, 세탁기면 세탁기, 그 제품의 기능을 가시화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최근에는 시장이 오브제 라인,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같이 제품끼리 통일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다고 생각해서, 한 공간에서 정리되어 있는 가전을 만들고 싶습니다.
앞으로 디자이너가 추구해야 할 가치나 태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유럽이나 일본의 디자인을 보면 포기하지 않은 디테일과 완성도가 보입니다. 이번에 IF 디자인 어워드 심사를 하며 많이 느꼈는데, 한국의 디자인도 우월한 위치에 있지만 아직 디자인의 완성도에 집착하는 부분이 아쉽다고 생각해요. 한국은 잘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들이 해외보다 상대적으로 불안정하고 어려운 위치에 놓여있잖아요. 해외에서는 디자인 스튜디오의 힘이 커서, ‘이 디자인 아니면 안 된다’고 밀고 나가는 성향이 있는데, 한국의 디자인 스튜디오들은 타협하며 기존의 디자인을 일부 포기하게 되는 상황이 많은 것 같아요. 기업 내의 디자이너들이 내부에서 힘을 키우거나, 디자인 스튜디오들이 디테일을 더 생각하며 더 성장하거나 해서 한국의 전체적인 디자인의 완성도와 퀄리티가 올라갔으면 합니다.
디자이너에게 트렌드를 읽어내고 시장을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 흐름을 놓치지 않는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하세요. 예전에는 신제품이 나왔을 때 소비자 개인이 그 제품을 접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는데, 요즘에는 바로 배송이 오고 피드백도 빨리 받을 수 있잖아요. 지금은 새로 나온 제품들과 디자인 트렌드에 대해 빠르게 접할 수 있으므로, 그것 중에 어느 것을 나의 디자인에 적용할지 거르고 판단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많이 경험하고 내 작업과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 판단하는 습관이 만들어져야 수많은 정보 사이에서 좋은 인사이트를 도출해낼 수 있어요. 또,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디자인이 왜 좋은지 설득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해요. 실무에서 엔지니어들에게 설득하려면 논리적으로든 감성적으로든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잘 설명하기 위해서 제품의 기술과 하드웨어/소프트웨어의 구조를 공부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선배님께서는 졸업 연도에 바로 LG 전자에 인턴으로 입사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있었던 어려움은 어떤 것이었나요?
원래는 졸업 후에 인테리어를 더 공부하려고 유학을 가려고 했어요. 고민하던 차에 LG 전자에 인턴의 기회가 주어졌고, 그 후에 정규직으로 합격하고 LG 전자에서 가전 디자인을 하면 기존에 하고 싶었던 디자인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회사에 다니면서 3-5년 주기로 유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큰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된다든가, 회사에서 미국으로 연수도 보내주고, MBA 경영대학원도 보내줘서 위기를 넘겼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이 회사에 남아있는 것이 맞는지, 다른 영역을 더 공부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졸업생으로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요? 사회에서 국민대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나, 동문이 보는 국민대학교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요?
회사에서도 후배들을 보면 성과를 내는 구성원 중에 국민대학교를 졸업한 분들이 많고, 실제로 현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 중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 출신이 많아서 자부심을 느끼셔도 됩니다. 여러 영역에서도, 글로벌 IF 디자인 어워드를 보더라도 한국 디자이너들의 위상이 굉장히 높아요. 한국 디자인 심사위원 중에서도 성정기 대표, 송봉규 대표, 저 이렇게 3명이나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 출신이어서 저희도 보고 놀랐습니다. 저희도 굉장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사회에 나와보시면, 현장에 잘 하는 선배들이 여러 분야에 포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다시 학부생으로 돌아가신다면 공업디자인학과를 전공하실 건가요? 다른 분야를 전공하신다면 어떤 분야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다시 돌아가도 공업디자인학과를 전공할 거예요. 지금은 프로젝트를 감독하는 일이 더 많긴 하지만, 아직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설레는 순간들이 있어요. 기업에는 수많은 부서가 있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번뜩이는 창의적인 포인트들을 잡는 능력은 디자이너들에게만 있고, 그렇게 확신해야 해요. 시장에서 변화를 생각해 내고 그 아이디어를 가시화해서 표현하는 능력은 디자이너에게 있으므로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고 봐요. 그래서 저는 다시 돌아가도 제품 디자인을 하고, 공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할 것 같아요. 지금도 제품을 기획하고 제안하고 목업을 만들어서 발표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재학생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지금 재학생들은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시기인 것 같아요. 본인이 하고 싶고, 조금이라도 잘할 수 있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서 계속하다 보면 더 잘하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학생 때는 내가 뭘 잘하는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모를 수 있어요. 그걸 찾는 것이 숙제죠. 엄청나게 어렵거나 멀리 있지 않고, 지금 내가 하고 싶고 잘하고 싶어 하는 것을 크게 발전하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형인 : 김수연, LG전자 상무
공업디자인학과 재학생 : 김슬기, 이승연, 홍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