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조형인 인터뷰
“디자인은 여러 가지 흩어져 있는 정보들을 조합해 클라이언트, 더 나아가 사용자가 뭘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자꾸 상상해야 해요. 그래서 이론만으로는 디자인을 배우기 어렵고, 결국은 실습을 통해서 깨달아야 하는 부분도 있죠. 작업을 해서 보여주었을 때 반응이 좋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잖아요. 그 과정을 겪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01학번 서문길이라고 합니다. 졸업 후 LG CNS에서 10년간 근무를 하다가 공동창업을 통해 단비 inc.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단비가 시작된 지는 5년 정도 되었네요.
졸업 후, 선배님의 경력과 경험하신 일을 소개해 주세요.
저는 사실 웹 에이전시 쪽으로 입사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학교 선배들이 찾아와 선배님들의 회사를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게 됐어요. 그때 LG CNS라는 회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죠. LG CNS에서 코딩을 할 줄 아는 신입을 구하고 있었는데, 제가 마침 컴퓨터실 관리자를 맡아서 조금이나마 그 부분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주변에서 추천을 받고 회사에 지원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까지는 그런 회사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그렇게 입사해서 처음 하게 된 일은 업무 시스템을 정비하는 일인데요, 돋움체를 굴림체로 바꿔주거나 하는 간단한 일부터 홈페이지의 키 비주얼의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하는 큰 업무를 하기도 했습니다. 일러스트, 기획, 코딩 등 다양한 일을 했었네요. 그렇게 1년 정도 있다 보니 답답함이 느껴지더라고요.
학교에 다닐 땐 자유로운 작업을 하다 보니 더 그렇게 느끼셨을 것 같아요.
네, 맞아요. 학교 다닐 땐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작업을 하다 보니 더욱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러다 2년 차 때 처음으로 외부 고객사에 가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LG유플러스의 홈페이지와 업무 시스템을 맡게 되었죠. 웹 퍼블리싱 같은 일들도 했었네요. 여러 고객사를 돌아다니며 프로젝트들을 진행했습니다. LG가 전 세계적으로 유통도 많이 하고 잘 돼서 스마트폰도 출시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잘 안됐어요. 그래서 LG에서 여러 계열사의 사람들을 모아서 10년 뒤 모바일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그 프로젝트에 참여해 선행 상품 기획을 1년 반 정도 했는데 그 일을 하다 보니 현재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더라고요. 미래적인 것만 관심이 생겼었죠.
그러다 보니 기술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그때 제 고민이 생겼는데요, 제가 기술을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제 디자인이 학예발표회가 되는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그려놨네' 이렇게 되는 상황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기술에 대해서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주변에 그런 기술적인 것들을 되게 잘 아시는 분이 계셨는데 기술사 자격증을 가지고 계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기술사 시험을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디자인이 더 설득력이 있게 하기 위해서요. 제가 2년간 공부를 했는데요. 시험 합격 컷이 60점이었는데 첫 시험은 34점을 맞고, 마지막 시험은 58.5점을 맞고 시험 준비를 그만두었습니다.
너무 아깝네요. 왜 기술사 시험을 그만두시게 되었나요?
정말 아깝죠, 근데 반년 더하려니 정말 힘들어서 그만두는 게 낫겠다 싶어 시험 준비를 멈추게 되었죠. 저도 힘들지만, 가족들도 힘들어해서 여기서 그만두는 게 맞겠다 싶었어요. 그때 자격증을 따진 못했지만 공부해둔 게 많아서 웬만한 기술 관련된 주제는 이해하고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 됐어요. 자격증까지 땄으면 좋았겠지만 안되더라도 공부가 많이 됐던 거죠. 그러다 사내 벤처 프로그램이 생겼어요. 그때 제가 재밌겠다! 싶어서 한 건 아니었고, 팀장님이 아무도 지원을 안 하니 네가 해봐라. 해서 지원을 했어요. 그때 아이디어는 반찬가게를 앱을 통해 홍보할 수 있으면 좋겠다. 동네끼리 좀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싶어서 동네에서 반찬가게를 홍보하고 배달까지 해주는 채팅 서비스를 생각했었어요.
그때 팀장님이 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고 상무님 한 분을 붙여주셨어요. 그 상무님이 사업적으로 생길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을 물어보시면서 원래의 채팅 서비스가 챗봇 서비스로 변하고, 그렇게 챗봇 아이템이 생겨났죠. 그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사내 벤처 프로그램에 론칭했는데, 아쉽게도 4등을 했어요. 근데 1, 2, 3등이 진행 포기를 하게 된 상황이 왔어요. 근데 상무님 입장에서는 사내 벤처 프로그램을 시작은 해야 하니, 저보고 다시 오라고 그러시더라고요. 프로그램 진행해 보고 싶냐고 하셔서 제가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었죠. 그게 2017년의 일이네요.
와,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그렇게 단비 Inc 챗봇 아이템이 생겨난 거군요?
네, 맞아요. 챗봇이라는 아이디어가 거기서 나왔어요. 2017년에는 챗봇 솔루션을 만들어서 LG유플러스에 납품했었어요. 원래 LG CNS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에이전지 상품을 만들어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상품이 거의 없었거든요. 있어도 잘되지 않았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6개월 만에 기획해 판매까지 성공하니까 그때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짱이었죠. 그 이후로 승승장구하진 않았지만요. 하하. 2018년에는 챗봇 솔루션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고민하게 되었어요. 따로 팀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연구과제로 끝을 낼 것인지 여쭤보셨죠. 저희는 이 챗봇 사업을 회사를 나가 따로 해보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제가 코딩이나 기획, 디자인까지 할 수 있어서 회사 내에서는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일이 세분화되어 있는 대기업에서 10년 동안 있다가 딱 나와서 보니까 그것들은 당연한 거더라고요. 재직증명서가 필요하면 HWP 파일을 열어서 재직증명서 만들고, 프린트해서 도장도 찍어야 했어요. 시스템화되어 있는 대기업과 너무 달랐어요. 3명이서 회사 차리니 정말 아무것도 없었죠. 영업 같은 것도 대기업에 있을 때는 영업팀에서 다 도와줬었는데 회사를 차리니 직접 해야 하더라고요. 그런 어려움도 있었죠. 지금도 그 과정에 있고요. 저희가 만든 아이템이 대박이 나면 좋겠는데 아직 물음표인 상태에 있어요. 그렇지만 아직 망하진 않았어요. 하하. 지금은 세종시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네요.
단비 Inc. 는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가요?
저희는 저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챗봇 빌더라고 부릅니다. 결과물을 만드는 툴을 제공하고 있죠. 원래 챗봇 만들 때, 입력값과 출력값을 코딩해야 하는데, 저희는 코딩할 필요 없이 챗봇 빌더에서 입력값 출력값을 세팅해 놓으면 답변이 나오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고객사 서버에 탑재해 줄 수도 있고, 클라우드에 서비스를 만들어놓고 구독해 사용할 수도 있어요. 처음에는 구독 서비스를 했다가 지금은 고객사 서버에 탑재해 주는 일까지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챗봇 서비스를 사용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교육 쪽에 챗봇을 사용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뭐 하나 봤더니 인공지능을 공부할 때 쓴대요. 그래서 초,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인공지능을 교육하는 서비스도 하고 있어요. 그 외에 개발 관련된 일이 오면 그 일도 하고 있고요.
지금 하고 계신 일에 대해서 자세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가능하시면 자료를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그럼요. 이게 저희 사이튼데요, 여기에 접속해 로그인하면 이런 친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 버튼을 누르거나 입력을 하면 스토리가 나오고요. 자주 물어보는 것을 넣어놓으면 이 챗봇이 자동으로 답변을 내줍니다.
https://danbee.ai
저희도 사용해 본 적 있어요. 설명해 주신 걸 들으니 더 다양하고 유용한 기능이 많았네요.
네, 이게 챗봇이고 저희가 사용하는 시리나 에이아이 서비스들도 다 같은 기술이에요. 지금은 세종시에서 주관하는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고 있어요. 세종시의 정보를 알려주는 챗봇을 만들고 있어요. 아이와 놀러 갈 만한 곳을 추천해 주거나, 내비게이션의 역할 등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에요.
(기대되네요. 실제로 상용화되면 너무 편리한 서비스가 될 것 같습니다.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선배님이 단비에서 진행하셨던 프로젝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학생 때 진행하셨던 프로젝트도 함께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단비를 처음 만들었던 프로젝트도 기억에 남지만 개인적으로 제가 맨 처음에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아요. 고객사에서 가 업무 시스템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는데요. 디자이너 총 3명이 투입되었고 각자 시안을 하나씩 잡았는데 제 것이 제일 마음에 든다고 하셔서 제거로 진행하기로 했었죠. 제가 승부욕이 좀 있어서 스킨 기능 이런 것도 넣었었어요. 하하. 그래도 매일 쓰는 업무 시스템인데 디자인이 하나면 답답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그 부분은 원래 개발하려던 부분이 아니라서 왜 그랬냐고 혼나기도 했었네요. 그래도 제가 열심히 한 만큼 사람들이 좋아해 줘서 결국은 선택되었어요. 그러다 5년 후에 LG 유플러스에 갔는데 제가 디자인해 놓은 화면을 다 쓰고 계시더라고요. 그때 참 기분 좋았어요.
학생 때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 중에서는 1학년 때 진행했던 조형전이 기억에 남아요. 보통 1학년들은 공사하는 거 도와 주거나하는 잡일을 했었는데, 저는 그때 하고 싶었던 작업이 있어서 선배님들의 도움을 받아 작업을 진행했어요. 제가 댄스동아리라 제가 춤추는 영상을 찍어 그 영상을 다시 손으로 그려내 플립 북을 만드는 작업을 했었어요. 그 이미지를 책에다가 넣고 브레이크 댄스에 대해서 설명하는 글을 적어 책을 만들었고요. 빨리 넘기면 이미지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고, 천천히 읽으면 자세한 동작도 보고 글도 읽을 수 있는 책이었죠. 뮤직비디오도 함께 만들어 전시를 했었죠. 그때 동기들이 제가 일은 안 하고 딴짓한다고 미워했었어요. 그래도 마무리는 열심히 했었죠.
그때 조형전은 어디서 했었나요?
4층에서 했었어요. 그날 밤엔 선배들도 오셨었어요. 오셔서 술도 사주시고 했었죠. 하하하. 플래시라는 툴을 사용했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플래시라는 툴은 벡터를 기반으로 모션을 잡을 수 있는 툴인데요. 과제로 포트폴리오용 사이트를 만들었는데 저만 애니메이션 넣어왔을 때. 그때 기분이 좋았었던 기억이 나네요.. 또 작품이라기보단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제가 댄스동아리를 열심히 했었는데 관련 행사가 있을 때 행사 포스터 디자인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비보이 유닛 행사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긴 했는데, 어느 날 제 파티션 옆에 앉아있는 후배가 그 포스터를 외주 받아서 만들고 있더라고요. 난 그 문화권 안에 있는데 그 일을 못 했고 후배는 비보이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데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걸 보고 참 많이 아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4학년 때는 쇼핑몰들 작업도 많이 해줬었는데 결국 다 망한 것도 기억에 남네요.
요즘 AI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AI와 관련된 회사를 운영하시고 있는 선배님 입장에서 이 변화를 디자이너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선배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사람들이 AI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다 보니 걱정돼서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은데요. 제 생각에 인공지능은 기술 중에 하나예요. 기술이 발전하면 툴이 좋아지고 툴이 좋아지면 더 높은 품질과 양을 원하게 돼요. 제가 1학년 때 학교 다닐 땐 다 디스켓을 들고 다녔어요. 더 예전에는 포스터를 만들려면 물감을 다 들고 직접 그려야 했다고 해요. 지금은 컴퓨터로 하면서 자유도나 편의가 더해지다 보니 더 많은 양과 퀄리티를 디자이너에게 요구하고 있죠. 기술이 발전하며 나타난 현상입니다. 저는 지금도 기획 업무를 할 때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인공지능을 쓰고 있어요. 피피티 기획서에 이미지를 넣는 거죠. 원래는 제가 직접 그려서 스캔한 후 사용하던 게 아이패드가 나온 후에는 바로 그려서 옮겨서 쓰고, 에이아이가 나온 후에는 글로 치며 이미지를 만들어 쓰는 거죠. 빠르게 많이 만들어서 쓰는 거죠.
저희도 과제할 때 달리나 챗지피티 같은 에이아이를 많이 사용해요. 학교에서 에이아이를 이용해 디자인을 더 빠르고 쉽고 퀄리티 있게 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셨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군요. 그게 결국 디테일적인 부분이나 방향은 인간이 잡아야 하다 보니 언어적 표현이 중요해지는 것 같긴 해요. 원래는 언어가 좀 안되더라도 그림을 그려 보여주면 됐었는데 이제는 에이아이에 언어로 명령해야 하다 보니 요즘엔 언어적인 능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도 그런 환경 속에 살면 자연스레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해요.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요. 디자이너도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대학생으로 돌아가면 다시 지금의 분야를 전공하시겠습니까? 다른 일을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어떤 분야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시각디자인과 공부가 되게 재밌었어서 다른 공부는 어떨지 모르겠어요. 만약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전공하고 싶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컴퓨터공학과고, 또 하나는 실용음악과예요. 음악 하는 걸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지금 취미로 하고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미술이나 음악은 취미로 해라’ 그 말이 맞는 거 같기도 해요. 저를 가르쳐 주시던 정말 잘하시는 기타 선생님들이 음반 냈다고 저한테 들려주는데 큰 울림이 없더라고요. ‘진짜 음악을 잘해도, 음악을 잘 만들기란 힘든 거구나’ 이 생각을 했어요. 진짜 음악 잘하시는 분인데도. 그렇다고 디자인과 나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국민대학교 졸업생으로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요? 사회에서 바라보는 국민대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나, 동문이 보는 국민대 동문에 대한 인상이나 기억나는 에피소드 등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디자인 계열에 있으신 분들은 국민대 출신이 머리가 좋고 작업도 잘하는 걸 다 알아요. 그렇지만 다른 과 분들이나 보통 분들은 잘 모르시더라고요. 이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에피소드 두 가지가 있어요. LG에서 디자이너를 채용할 때, 디자인계의 탑쓰리인 서울대, 홍대, 국민대가 당연히 들어가야 되잖아요. 그런데 팀장님이 따로 얘기를 안 해놓으면 인사팀에서 국민대를 거르게 되고, 그 해에는 국민대 사람들이 다 떨어지는 거예요. 이런 해프닝 때문에 제 후배 한 명이 서류에서 떨어진 일이 있었는데요, 그 친구는 지금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아주 잘 살고 있어요. 물론 LG에서도 잘했겠지만요. ‘대기업 떨어져도 아무 문제없다, 상황에 따라 더 잘 살 수 있다.’라는 말을 하고 싶네요.
두 번째 에피소드는 제가 예전에 영업을 다닐 때였는데요. 우연히 정치인 한 분, 교수님 한 분과 밥을 먹게 됐어요. 그렇게 셋이 앉아서 얘기를 하다가 출신 학교 얘기가 나왔었어요. 제가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과 나왔습니다!’라고 하니까 갑자기 옆에 앉아계시던 교수님이 벌떡 일어나면서 정치인께 ‘의원님! 이분이 대한민국 최고입니다!’ 갑자기 그러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악수도 요청하시고, 본인도 국민대 출신이라고 하시면서 너무 반갑다고 그랬었죠. 그전까지는 저에게 관심도 없었는데 순식간에 태도가 바뀐 거에요. 생각해 보면 특히 국민대 선배들이 엄청 반가워하시는 것 같네요.
디자인 작업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 디자이너로서의 태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금도 입시할 때 발상과 표현을 하나요? 저는 디자인이라는 게 발상과 표현이라는 말 그대로인 것 같아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이 있잖아요. 그걸 표현해 내고,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면 디자인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 디자이너가 어떤 의도를 했는지 느낌이 온다!’라고 파악이 가능하면 정말 잘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따지고 보면 제가 하는 모든 일이 발상과 표현이더라고요. 오히려 코딩을 할 때는 정해진 과정대로 하면 되는 거여서 발상과 표현이 필요 없어요. 명확해요.
그렇지만 디자인은 여러 가지 흩어져 있는 정보들을 조합해 클라이언트, 더 나아가 사용자가 뭘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자꾸 상상해야 해요. 그래서 이론만으로는 디자인을 배우기 어렵고, 결국은 실습을 통해서 깨달아야 하는 부분도 있죠. 작업을 해서 보여주었을 때 반응이 좋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잖아요. 그 과정을 겪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 작업을 많이 하고, 많이 보여주고, 많이 피드백받고, 많이 느끼는 과정 속에 디자인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잘하는 사람들에 딱 붙어가지고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옆에서 보고. 계속 배우려고 하는 게 중요한 태도인 것 같아요.
디자이너들은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능력이 필요해요. 근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바로 ‘이 사람은 디자이너고, 이 사람은 감각이 뛰어나구나.’를 평상시에 느끼게 하는 거에요. 그러면 그 디자이너의 말을 되게 신뢰하거든요. 그런데 만약에 옷도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고, 평소 태도도 센스가 없다면 신뢰도가 떨어지죠. 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또 다른 태도는 디자이너 하고 아티스트의 차이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볼게요. 어떤 사람은 아티스트가 자신을 위한 창작을 한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저는 그 얘기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해요. 디자이너가 봤을 때 아티스트는 아트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디자이너예요. 아티스트들은 일반인이 하는 문법이나 어떤 상식에서 반항을 해야 그 시장에서 통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클라이언트가 아티스트에게 ‘이 작품을 상투적으로 이렇게 바꿔주세요’라고 했을 때 절대 바꿔주지 않아요. 근데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가 ‘이걸 상투적으로 바꿔주세요'라고 할 때, 그 이면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캐치해야 돼요. 그걸 캐치해서 클라이언트가 얘기한걸 그대로 해주면 중수고, 그 뒤에 숨어있는 더 큰 의도를 반영한다면 그건 고수겠죠. 결국 내가 상대하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가 핵심인 거죠. 그걸 파악해 내는 게 좋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지금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재학생들에게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일단은 세 가지를 얘기하고 싶어요. 좀 많은가요? 첫 번째는 교수님들의 커리큘럼을 잘 따르라는 거예요. 교수님들의 커리큘럼을 잘 따라서 성실하게 수업에 임하면, 한국의 톱 클래스 디자이너가 될 수 있어요. 이건 확실해요. 근데 이제 학생들이 그걸 잘 안 해서 어려운 거죠.
두 번째는, 지금 같이 지내는 친구들하고 서로 잘 알아 두는 게 중요해요. 한 5년, 10년 뒤에 갑자기 전화해도 어색하지 않게 많은 추억들을 만들고, 같이 작업도 하고, 같이 놀기도 하면 그게 다 도움이 돼요. 본인이 꼭 디자인하지 않더라도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할 수도 있는데, 사업하면서 보면 네트워크가 6~70% 정도로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네트워크가 능력이에요. 일이 들어왔는데, 내 능력 밖의 일일 때도 네트워크가 큰 도움이 돼요.
마지막 세 번째는 디자인이라는 전공이 인생 최대 함정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꼭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디자인을 배우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조형감각이나 트렌드등 여러 가지를 배우거든요. 그걸 가지고 주식투자를 해도 의미가 있고요, 그걸 가지고 장사를 해도 의미가 있는 거죠. 막상 해보니까 나랑 안 맞는다 싶으면, 디자인 감각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다른 관련된 일도 엄청나게 많아요.
정리하자면 첫 번째가 커리큘럼, 두 번째가 인맥, 세 번째가 디자인이라는 전공이 함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 이렇게 세 가지를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조형인 : 서문길, 단비 inc. 대표
시각디자인학과 재학생 : 방재연, 부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