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조형인 인터뷰

“전공은 어떤 점에서는 교양과 같다고 생각해서 전공 공부란 교양을 쌓는 것이지 그 사람이 특정한 일에 적합한지 아닌지를 결정짓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디자인이란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파악하고,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고 설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과정이 설득력이 없다면 그 사람이 어떤 전공을 했는지는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이건희 대표

현재 하고 계신 일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저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업사이클링하여 새로운 자원순환 구조를 만드는 일을 하는 주식회사 프래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나요?

현재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이는 모듈형 점자 사인 만드는 중입니다. 헤이그라운드라고 공유 오피스 사업을 진행 중인 사회적 기업이 있습니다. 그 기업과 협업하여 작업 중입니다. 잘 진행되고 있어요. 또 제가 직접 관여하지 않고도 팀별로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기도 합니다.

팀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고 하셨는데, 팀은 어떻게 조직되어 있고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했나요?

팀은 브랜드팀, 메뉴팩처팀 이렇게 두 팀으로 나누어집니다. 메뉴팩처팀은 플라스틱 재활용, 제조 공정, 과정 향상 등을 담당하고 있고, 브랜드팀은 브랜드 홍보, 마케팅, 판매 기획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선 올해 초 "최고심" 캐릭터와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고, 해외에선 8월에 일본 츠타야 팝업스토어를 열 예정입니다.

재학시절 반지 판매, 폐자전거 업사이클링 등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때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나요? 졸업 후, 선배님의 경력과 경험하신 일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도움이 되었습니다. 폐자전거 업사이클링은 3학년 과제전 때문에 진행하게 된 작업인데, 과제를 하다 보면 사실 재료비가 아깝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쩌다 우연히 폐자전거를 얻게 되었어요. 그 당시 프라이탁 등 업사이클링 브랜드가 퍼지기 시작하던 시기라 학교에서 배운 용접 등의 기술을 활용하여 나도 업사이클링 한 번 해보자, 하게 된 거 같습니다.
또 반지 같은 경우엔 학교 축제 때 󰡒허전한 손가락󰡓이라고 커플링을 커스텀 해주는 부스를 운영했는데, 장사가 제법 잘 되었습니다. 이후엔 블로그를 통해 도안을 받아서 종로에서 레이저 각인도 해주는 방식으로 판매했습니다. 이때 경험을 통해 󰡒아 장사라는 건 연속성도 있어야 하고 지속적으로 고객 서비스를 발전시켜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됐고 이 생각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졸업 후엔 󰡒두 바퀴 희망 자전거󰡓라는 사회적 기업에서 1년 정도 같이 프로젝트를 하게 됐는데, 이 기업은 노숙인 분들이 폐자전거를 업사이클링한 후에 판매해서 수입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그런 기업입니다. 이 기업과 같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사회적 기업, 소셜 벤처와 같은 개념을 직접 체득하였고, 이 경험이 자산이 돼서 이후에 버려지는 폐기물을 활용한 작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16년도에 청년 지원 사업으로부터 천만 원 정도를 지원받아 기계를 직접 만드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기계들을 제작하셨나요? 이런 기계 제작에 있어 금속공예학과를 전공했다는 것이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15년도 졸업을 하고, 16년도에 지원 사업에서 천만 원 정도를 지원받았습니다. 분쇄기, 압출기, 사출기 순으로 제작했는데, 용접도 직접 했고, 분쇄기도 레이저 커팅을 맡겨서 제작했습니다. 같이 일하던 동료랑 설계했고 당시 을지로에 있었는데, 필요한 여러 공구나 기계들을 직접 공수해서 제작했습니다. 금속공예학과를 다니면서 용접도 배우고 라이노 등 설계, 모델링 툴을 배우기 때문에 물리적인 기구 부를 만들 때는 학교 다니면서 공부했던 내용이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기계 제작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지금은 업사이클링 제품이나 기계들이 많이 상용화되어있는 것 같은데, 당시엔 참고할 만한 자료나 제품이 많이 상용화되어있지 않았을 것 같아요.

업사이클링과 같은 분야의 용어가 현재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져 있어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당시에도 해당 분야에서는 손쉽게 자료나 제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현재 을지로 구역이 재개발되면서 가게가 많이 없어졌는데, 오히려 그 당시 접근성이 더 좋았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시 을지로에서 볼 수 있는 기계나 공구들도 많았고 그걸 가져다가 기구 부를 만들 때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히터나 컨트롤러 등 전기 부를 달고 조절할 때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너무 낯설기도 하고, 터질 거 같기도 해서 전기적인 부분을 다룰 때 어려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병뚜껑 색을 분류하는 기계도 있던데, 이런 기계는 기존에 있던 제품을 사용하시는 건가요?

해당 기계는 로봇팔인데, 로봇팔이 병뚜껑을 색깔별로 구분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었습니다. 로봇팔을 만드는 회사에 찾아가서 이런 걸 만들고 싶은데 만들어 줄 수 있냐고 묻고 외주를 맡겼어요. 외주 제작을 맡기기 전에 제가 해야 할 일은 로봇팔의 구체적인 사양을 자세하게 정리하는 거였습니다. 예산과 비용에 맞는 사양과 디자인을 업체에 제공했고, 계속 컨텍하고 협의하면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로봇 분야의 회사가 아주 세분화 되어 있어서 제가 모든 과정을 직접 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 외주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금속공예를 전공했다는 것이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되셨나요? 이전 인터뷰에서 물성을 다루는 철학적인 면을 배웠다고 하셨는데, 저는 여러 가지 물성을 다뤄보는 것이 디자인이나 기술적인 면에서도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창업 후 실무는 좀 다를까요?

저는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 그 사람이 어떤 학교, 전공인지보다 그 사람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요즘 본인의 전공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이 적어요. 전공은 어떤 점에서는 교양과 같다고 생각해서 전공 공부란 교양을 쌓는 것이지 그 사람이 특정한 일에 적합한지 아닌지를 결정짓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디자인이란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파악하고,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고 설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과정이 설득력이 없다면 그 사람이 어떤 전공을 했는지는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전문적인 지식이 있다는 것은 좋은 토양이지만, 그 토양을 바탕으로 열매를 맺고 확장해 가는 건 그 사람 자체의 역량에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전공에 자기를 국한하는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워요. 실제로 너무 많이 알면 작업이 제한되는 경우가 있는데, 스스로가 뭔가를 알게 되면, 그 너머로 나아가기 쉽지 않고 오히려 거기에 갇혀버리는 순간도 있습니다. 내가 가진 지식 안에선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도 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다양한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디자인 분야가 엄청 다양하고 세분되어 있어서 스페셜한 기술을 가지기보다는 제네럴한 기술을 가졌을 때 초기에는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금속공예를 전공하면서 머리로만 생각하기보다 몸을 움직이면서 체득한 경험이 많은데 이 경험이 가장 특별하고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습니다.

저도 데님 의류를 업사이클링한 제품을 제작해 판매 중인데요. 같은 학교, 같은 과 선배님으로서 창업에 대해 조언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전 다른 인터뷰에서 단순히 만든다는 생각이 아닌, 미션을 해결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인상 깊게 봤습니다.

계속 비교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 되게 여러 갈래로 유형이 갈리는데, 회사 취업, 유학, 창업 등등 같은 시기에 시작해도 차이가 나고 비교하게 됩니다. 그럴 때 무너지지 않고, 중심을 세운 뒤 본인의 길을 계속 가려면, 남과 비교하기보다 본인만의 미션과 의지력을 가지고, 창업해야 합니다. 저도 졸업 초창기에는 대기업에 취직해서 돈 많이 버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학창 시절엔 나랑 비슷했던 거 같은데 한 번의 선택으로 이렇게 인생이 달라지나?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 길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걷게 된 길인지 생각하고, 미션을 구체화하고, 장기화해야 내 삶에 대한 의지력과 자신감이 생깁니다. 이건 창업에도 적용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 오히려 살아가면서 도움이 되는 마음가짐인 거 같아요.

디자인이나 공예를 전공하고 창업하는 개인 사업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치열해지는 경쟁 안에서 어떤 목표 의식을 가지고 사업체를 운영하면 좋을까요?

창업하는 친구들이 많아지는 이유는 취업하기가 어려워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창업을 하는 사람은 고객이나 상품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트렌드를 이끌 줄 알아야 해요. 내 생각과 현실이 맞는지 계속해서 냉철하게 분석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이 치열한 건 맞지만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것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초반엔 특히 두루뭉술한 기획보다 많은 조사를 통해 예리한 기획을 짜고, 특정 계층을 노리고 기획해보는 것 또한 좋은 경험과 공부가 될 수 있어요. 특정한 고객층, 특정한 상품 공략 등 계획을 철저히 짜는 게 중요하고, 그 계획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확인하고 발전시키면서 지속해 나가야 합니다.

선배님은 디자인 작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디자인에 관한 생각이나, 디자이너가 가져야 하는 태도에 관해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제가 지금 디자인을 많이 하고 있진 않지만, 초기에는 고객층을 예리하게 파악한 설득력 있는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연차가 쌓이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쨌든 내가 만든 디자인은 소모가 되잖아요? 그중에서 내 디자인이 계속 살아남았으면 하는 욕심이 들어요. 제품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은 다 같은 마음일 거예요. 저는 딱 어떤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다. 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타임리스 디자인도 좋고, 한순간이지만 그 시대를 풍미하는 디자인도 충분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디자인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오히려 가장 기본이 되는 시작과 끝맺음인 것 같아요. 뭔가 하나 좋아서 시작했다면 끝까지 가보고, 성과를 내고 평가하는 것이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같네요.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무엇이든 시작이 중요하고 끝은 더 중요해요.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졸업생으로 느끼는 점이나, 사회에서 바라보는 국민대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동문이 보는 국민대 동문에 대한 인상이나 에피소드 같은 게 있을까요?

저는 일단 회사에서 일을 하질 않아서 실제로 회사에선 학교 어디 출신이냐 물어보는지 잘 몰라요. (웃음) 그래서 사실 크게 느끼는 점이나 에피소드 같은 게 없습니다. 근데 이게 국민대 디자인스쿨을 졸업한 장점인 거 같아요. 대학교 좋은 데 나왔으니까 내가 굳이 디자인 분야와 관련해서 학교를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게 큰 장점인 거 같네요. 신경 쓰지 않는데,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 하지만 요즘엔 출신 학교가 그 사람을 보증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시선이 많기 때문에 학교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시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조형인에 선정되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인, 어른이 되고 나서는 상장 받을 일이 없잖아요. 학교 다닐 때는 어디 대회 나가면 장려상이라도 주고 상장 만들어줘서 집에 상장 가져가면, 엄마 아빠가 상 받아왔다고 치킨 한 마리 사주시고 그랬는데 대학까지 졸업하고 나면 상 받을 일이 더더욱 없잖아요. 조형인으로 선정되고 상패 같은 것도 만들어서 주시고 하니까 기분이 되게 좋았던 거 같아요.

대학생으로 돌아가면 다시 금속공예를 전공하실 건가요? 혹시 다른 전공을 할 수 있다면 어떤 분야를 공부하시고 싶으세요?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금속공예를 다시 전공할 거 같지는 않아요. 최근에 일본 드라마 중 '브러쉬 업 라이프'라고 인생을 몇 회차씩 사는 이야기를 되게 재밌게 봤는데, 살면서 금속 공예는 한 번 전공해봤으면 됐다고 생각해요. 충분히 재밌었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돌아가서 더 잘하고 싶다 뭐 이건 아닌 거 같아요. 저는 디자인보다 공대나 건축을 공부해 보고 싶어요. 건축은 굉장히 범위가 넓잖아요. 사람이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한 이해도도 높고. 그래서 건축을 공부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다시 돌아간다면 뭘 할까에 대해 평소에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서 딱 확정 지어 말할 순 없지만, 지금 하는 일도 플라스틱, 석유화학에 관련된 일이잖아요. 하는 일 때문인지 물질이라는 건 뭘까 궁금하고 더 잘 이해해 보고 싶긴 해요. 그래서 화학 쪽도 공부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의 국민대학교 금속공예학과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3, 4년 전에 했던 인터뷰에서 학교 열심히 왜 다니냐 그런 얘기 많이 했었는데 (웃음) 지금은 가지고 있는 역량을 충분히 잘 활용해서 잘 마무리 짓는 게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자신의 지금 학년과 위치에서 할 수 있는, 해야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거 하나하나가 쌓여서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주어진 일을 본인의 환경에 맞춰 잘 마무리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형인 : 이건희, (주)프래그 대표

금속공예학과 재학생 : 윤다빈, 이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