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CEO토크
디자이너들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사무실 가득 걸려 있는 옷들과 낡은 줄자들이 이곳이 프로의 세계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이니플래닝 김경희 대표는 국민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LG패션, ㈜쌍방울, ㈜한섬 등을 거쳐 지금의 이니플래닝을 창업했다. 올해로 13주년을 맞은 이니플래닝은 ‘리안뉴욕’, ‘엘르’ 등 여성복 브랜드로 유명한 중견 의류기업이다. 김 대표의 야무진 인상과 정돈돼 보이는 스타일에서 패션업계의 오너다운 포스가 느껴졌다. “회사를 선택할 때는 ‘어떤 브랜드’가 아니라, ‘어떤 소비자와 소통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세요. 그리고 항상 나 자신이 브랜드라는 걸 잊지 마세요.” 이날 김 대표는 “회사를 다니는 것이나, 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며, “후배들이 ‘좋은 태도’를 갖추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30여 년간 패션디자이너로서 삶을 우직하게 걷고 있는 이니플래닝 김경희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이니플래닝은 대표 브랜드인 ‘리안뉴욕’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중견기업으로 알고있습니다. 자세한 소개를 해주신다면?
리안뉴욕은 건강한 가치관을 가진 소비자와 건강하게 소통하는 브랜드에요. 혹시 150만 원짜리 코트를 사 입을 수 있으세요? 80만 원짜리도 잘 안 사 입으시죠? 저는 음식 장사를 해도 6~7천원짜리의 음식을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만들어 전달할까를 고민할 것 같아요. 옷도 그래요. 리안뉴욕은 건강한 제품을 건강한 가격에 제공해서, 건강한 가치관을 가진 소비자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만든 브랜드에요. 한마디로 ‘고객에게 위로를 받자’는 게 저희 브랜드 모토인데, 구체적으로는 ‘의문형 브랜드를 만들자’는 게 리안의 마인드에요. ‘어떻게 이런 가격으로, 이런 품질의 디자인을 만들었을까’ 하고 소비자들이 감탄하며 행복하게 만들자는 거죠.
Q 리안뉴욕이 어느덧 브랜드 출범 13년 차에 접어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창업 당시 목표를 얼마나 이뤄내셨나요?
개인적으로 혈연•지연•학연을 절대 배제한 투명하고 건강한 회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부도덕한 회사, 오너가 투명하지 않은 회사에서 일하는 건 스스로의 존엄이 깨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연봉 100억을 받는다고 해도 말이죠. 회사는 내가 열심히 일하고 꿈 꾸는 시간이 낭비되지 않는 곳이어야 해요. 이런 생각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저희 회사 직원들은 한번 들어오면 나갈 생각을 안 해요(웃음). 특히 매장 식구 대부분이 런칭 멤버들인데, 본인들이 매장에서 활동할 수 없는 나이가 되면 물류에 가서라도 일을 하겠다고 해요. 둘째는 브랜드 가치가 사회에 환원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 부분은 앞에서 말씀 드린 ‘소비자와의 건강한 소통’과 일맥상통하고요. 회사를 만들 때는 이 회사를 어떻게 끝낼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운영 과정이 너무 험난해져요. 제 경우는 ‘5년 차에 사옥을 사겠다’, ‘7년 차에 물류센터를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그대로 다 이뤄왔어요. 무작정 매출 몇 억? 그게 목표가 될 수는 없다는 얘기예요.
Q 원래 꿈이 패션디자이너였나요? 방송국 활동도 굉장히 열심히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학 들어올 때 의상학과와 신문방송학과를 두고 고민했어요. 어렸을 때 꿈이 아나운서였거든요(웃음). 그래서 의상학과를 다니면서 국민대학교 교내 방송국 활동을 했어요.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저희 때는 방송국, 학보사(국민대 신문사), 영자신문사 중에 방송국이 제일 기강이 셌어요. 본래 방송국 활동을 하면 학교가 아니라 방송국을 다닌다고 할 정도로 일이 많은데, 저는 살금살금 학점 관리를 해서 동기들한테 욕을 많이 먹었어요(웃음). 과대표도 3년간 했었는데, 그때는 어떤 권익이 올까 봐 그걸 경계하려는 차원에서 교수님 방에도 절대 들어가지 않고, 교수님과 어떤 사담도 하지 않겠다는 규칙을 세웠어요. 학교를 열심히 다니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틈틈이 학점관리를 해서 수석졸업을 했고요.
Q 대학에서 처음 디자인했던 옷이 기억나시나요? 실제로 입고 다니기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패션은 자기소개서’라는 광고 카피가 있었어요. 광고 카피만큼 시대를 잘 조명하는 문구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패션도 그래요. LG패션 면접을 갔을 때도 그렇고 저는 평소에 직접 만든 옷을 자주 입고 다녔어요. 잘 입었다, 못 입었다가 아니라 나를 어떻게 표현할까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또 그때는 유럽에서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유행이 들어왔는데, 그 기간이 2년 정도 걸렸어요. 외국으로 출장을 가지 않으면 유행이 흡수되기 어려운 시대였죠.
그런데 유행이라는 게 참 작위적이에요. ‘블랙이 유행이네?’ 하면 모든 브랜드가 블랙을 내놓잖아요. 만일 작년에 그레이가 유행하면 소비자들이 올해 또 그레이를 사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서 매년 유행하는 컬러를 바꿔 내놓는 거고요. 우리가 옷장에서 옷을 치우는 시간이 보통 5년 주기로 돌아가요. 요즘 최고의 컬쳐코드는 ‘eclecticism’ 절충주의가 아닐까 해요. 그리고 패션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패션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그때도 지금도 스포티브, 모던, 여성성이 적절하게 섞여 있는 패션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Q 남성중심의 문화였던 그 시절, 여성들에게 차별적인 부분이 존재했을 듯합니다. 일을 하면서 그런 문제에 부딪힌 적은 없으셨나요?
저는 제약이 있어서 뭔가를 못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 문제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어요. 제도권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죠. 인정하고 출발하면 50보 앞에서 시작하는 거고, 부정하면 50보 뒤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저는 MD마인드인데, 제가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이유도 그런 점 때문이 아닐까 해요. 패션업계는 남자 경영자가 대부분인데, 성별을 떠나서 옷은 기획실 디자이너의 머리에서 출발하잖아요. 때문에 편견이나 벽에 부딪힐 일은 없다고 봐요.
Q 패션계 여성 경영인으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첫 회사를 10년, 두 번째 회사를 7년 다녔는데, 우리나라에는 장기간 회사를 다닌 패션디자이너가 많지 않아요. 나라를 대표할 만한 패션디자이너가 없다는 사실도 이직이 상당 부분 원인으로 자리할 거고요. 내 장점과, 소비자의 생각, 트렌드가 잘 융•복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려요. 패션뿐 아니라 모든 직업이 마찬가지고요. 시간이 주는 역사가 있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패션디자이너들이 회사를 2~3년 정도 다니다 그만둬요. 제가 창업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한 회사에서 오래 근무했던 게 아닐까 해요. 한 회사를 오래 다닌 만큼, 자기 사업도 쉽게 포기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믿음을 주었던 것 같아요.
따지고 보면 사업과 직장생활은 큰 차이가 없어요. 평소에 지닌 태도가 자신의 가치를 결정짓는 거니까요. 연봉을 올리거나 이직을 하는 것도 그간의 내 태도와 성과가 인정받느냐 못 받느냐의 문제라고 봐요.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내 행동 자체가 내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후배들이 그걸 명심했으면 하고요.
Q 디자이너로서 대표님이 이뤄내신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는 무엇인가요?
제가 학교를 다닐 때 저희 건물 바로 위에 건축학과가 있었어요. 건축물은 한번 지으면 백 년도 가잖아요? 저도 그런 브랜드를 만드는 게 꿈이에요. 회사생활 하면서 만든 브랜드 중 건재하는 브랜드들이 몇 개 있는데, 제가 세상에 내놓은 브랜드가 오래오래 사랑받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는 것 같아요.
Q 이니플래닝에는 모두 몇 개의 브랜드가 있나요? 또 해외로도 사업을 확장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설명해주신다면?
브랜드는 리안뉴욕, 엘르, 팝스에비뉴, 티플레닛 이렇게 4개가 있어요. 팝스에비뉴는 테스트 중인 편집매장이고, 엘르는 해외진출에 속도를 내려고 인수하게 됐어요. 리안뉴욕은 북경에 6~7개 정도 매장이 있는데 파트너를 찾는 게 힘들어요. 선택의 여지없이 반드시 해야 하는 사업이 중국 진출이에요. 중국을 경상도 정도로 생각해야 국익에 도움을 줄 수 있거든요. 리안뉴욕은 20대 초반 대상의 브랜드인데 일주일 동안 계속 입어도 티 안 나는 옷을 만들려고 해요(웃음). 엘르는 30대, 팝스에비뉴는 지역 밀착형 편집매장, 티플레닛은 차, 액세서리, 옷을 함께 판매하는 매장이에요.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진출한 브랜드만 백 개가 넘는다고 해요. 그런데 그 중에 잘 된 브랜드는 몇 안돼요. 단순히 회사를 키우겠다, 돈을 벌겠다는 목적만 가지고 있어서 그럴 거예요. 모 브랜드가가 중국에서 성공한 이유가 사업 마인드를 ‘소비자 행복’에 맞췄기 때문이에요. 모 브랜드가 중국에서 성공한 이유가 사업 마인드를 ‘소비자 행복’에 맞췄기 때문이에요. 그곳은 한국보다 중국 매출이 더 많은 회사예요.
Q 이니플래닝만의 독특한 회사 문화가 있다면?
저희 회사는 직원들이 다 같이 공부를 해요. 최근에는 《노자》를 공부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1년 동안 세계사 선생님이 오셨고, 그전에는 미술사, 중국어, 한문을 공부했어요. 실제로 시험도 보고요(웃음). 공부할 때는 아주 무섭게 시켜요.
패션은 미술이 아니라 인문학에 더 가까워요. 모든 직업이 그렇다고 생각하고요. 어떤 사람은 음식으로, 어떤 사람은 글로, 어떤 사람은 옷으로 표현할 뿐이죠. 예를 들어, ‘놈코어’라는 말은 ‘노멀’과 ‘하드코어’가 합해진 말인데, 이건 패션뿐 아니라 사회의 전반적인 의식을 반영해요. 예전에는 알이 큰 액세서리를 즐겼다면, 지금은 오히려 그런 화려함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의미에요. 그림을 잘 그리거나 봉제를 잘하는 건 기술의 문제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세상에 대한 관심’이에요. 디자이너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 모두가 디자인에 반영되거든요.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 좋은 옷을 만들 수 있고요.
Q 회사 사훈이 있다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매일 사훈이 바뀐다고 보시면 돼요. 오늘의 최선이 내일의 최선이 아니라는 거죠. 세종대왕이 ‘최선이다’라고 안 하고 ‘최선을 다하자’라고 말씀하신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성공을 미래형으로 물어보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 사람 성공했어?’ 이렇게 과거형으로 물어요. 지금부터 5~6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내일의 성공을 담보할 뿐이에요. 오늘 놀면 당연히 내일은 성공할 수가 없죠.
이건희 회장의 아버님이신 이병철 회장님이 남긴 유언이 ‘경청’ 하나였다고 하죠? 저는 하루에도 수십 번 느낌표와 물음표가 생겨요. 퀵 아저씨를 봐도, 식당 주인을 봐도, 부모님, 남편, 아이에게도, 직원들을 보면서도 배우는 게 많아요. 사실 ‘아’ 하고 느끼는 사람만이 자기 것을 얻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매일 사훈이 바뀐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여성 경영인으로서 버틸 수 있는 힘도 ‘경청’하려는 태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요. 시크한 자세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어요.
Q 패션회사의 경영인으로서 최근 트렌드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신다면?
2020년이 되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구의 85%가 지표면의 2%에 해당하는 도시에서 살게 된다고 해요. 그런 면에서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데, 그래서 이 일을 그만두게 되면 환경과 관련한 일을 하려고 해요. 요즘 SPA 브랜드를 보면 ‘니즈’의 시대가 아니라 ‘원트’의 시대라고 하잖아요. 옷을 필요해서 사는 게 아니라 갖고 싶어서 산다는 거죠. 영국에서 수거한 옷 중에는 라벨도 떼지 않은 옷들이 엄청 많다고 해요. 이는 비단 영국의 문제만도 아니고요. 패션업계 경영자로서 굉장한 딜레마에요. 소비를 창출해야 하는 건 분명한데, 그에 비례해 생기는 피해가 크니 고민이죠.
800년 후쯤에는 지구를 떠나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 조금이라도 그 기간을 연장시키려면 물도 아껴 쓰고 환경오염을 막아야 해요. 그래서 저는 화장실에 큰 통을 두고 사용하고 난 깨끗한 물은 보관했다가 화장실 물을 내려요. 교과서적인 이야기 같지만, 일본에서는 초등학생들이 1년에 48시간을 ‘환경지킴이’ 활동을 한다고 해요. 업체들을 방문해서 온도는 잘 지키고 있는지, 쓰레기 분리수거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검사를 하는 거예요. 아무래도 애들이 보니까 어른들이 안 지킬 수 없잖아요. 저희 나라도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염색할 때 물이 많이 사용되는 빨간색이 유행한다고 하면 이제는 ‘대구에서 지금 얼마나 많은 물을 쓰고 있을까?’ 하는 고민이 생겨요.
Q 동물보호에 관심이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얼마 전에는 직원들 하고 동영상을 하나 봤어요. 오리털 생산 현장을 담은 영상이었는데, 살아 있는 오리의 털을 뽑고 상처가 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꿰매더라고요. 끔찍하죠? 그런데 더 끔찍한 건 3개월 뒤에 털이 다시 자라면 또 뽑히고, 또 뽑혀요. 그렇게 2년 동안 고통받은 뒤에는 고기가 되고요. 때문에 오리들이 자학을 하고 병들어 죽는 일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비인도적이죠? 그래서 저희는 가능하면 오리털을 줄이거나 안쓰려고 해요. 사실 우리나라는 오리털이 필요할 정도로 춥지 않거든요. 원래 덕다운은 캐나다 산악구조원들이 입는 옷이에요. 그래서 이번에 개발된 신소재로 덕다운을 대체하고 있어요. 햇볕을 쬐면 17도가 더 따뜻해지는 소재예요. 또 모피는 중국에서 생산되는데, 우리나라가 최대 수입국이라고 해요. 외국에서는 모피 풀스킨을 입고 다니는 것을 굉장히 혐오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변화되는 단계예요. 그래도 요즘은 동물보호에 관심이 많아져서 곧 나아지지 않을까 해요. 저희 회사도 최근에 동물협회 브로셔를 5천~1만부 정도 제작해서 지원하고 있어요. 내가 아끼는 물이, 내가 지금 지키는 것이 우리 자녀들, 후손들한테 조금이나마 피해를 덜 줄것이라고 생각해요.
Q 후배 디자이너 육성을 위해 지난해 10월 국민대학교 의상학과 선배들이 졸업패션쇼를 심사하고, 멘토로도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후배들의 작품을 심사하신 소감을 말씀해주신다면?
제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주관하는 ‘대한민국패션대전’에서 1984년, 85년 2회 연속 수상을 했어요. 그래서 꽤 오랫동안 심사를 맡았는데, 매번 느끼는 거지만 작품은 결과물만 봐서는 몰라요. 혹시 <프로젝트 런웨이>라는 방송프로그램을 보셨는지 모르지만, 디자인은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해요. 과정을 보면 디자이너가 ‘어떤 발상, 어떤 컨셉, 어떤 노력으로 이런 결과물을 만들었구나’를 알게 되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의 심사가 과정이 아닌 결과 중심이라 아쉬울 때가 많아요. 그래서 이번 졸업패션쇼에서는 졸업생들이 심사를 하고 저희는 학생들의 열정에 대한 부분을 많이 봤어요. 제가 1984년에 졸업을 했는데, ‘그때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할 정도로 디자인이 무척 감각적이더라고요. 동문회에서 4명 정도 시상을 했는데, 웨어러블 트렌드를 반영한 작품들도 인상적이었고, 창의적인 작품들도 굉장히 많았어요. 의상학과는 ‘국홍서’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국민대, 홍대, 서울대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그중에서 감각적인 면은 국민대가 단연 최고가 아닐까 합니다.
Q 대학을 졸업할 즈음 누구나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졸업을 앞두면 취업을 할지, 유학을 갈지, 공부를 계속 할지 고민할 거예요. 제 개인적으로는 후배들이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으면 해요. 한국에서 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하려면 소비자 마음을 읽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직접 일을 해보면서 자기만의 커리어를 쌓았으면 해요. 잡지를 보고 좋은 영감을 얻을 순 없어요. 지금 세대들의 예측수명은 120세잖아요? 일단 졸업했으면 현장에서 뛰어보고 거기서 또 자기만의 것을 찾으면 돼요. 경험을 쌓고 난 뒤 공부를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요.
지난 12월 16일에 저희 동문회가 멘토링 콘서트를 열었었어요. 졸업한 선배들이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멘토가 되는 콘서트였는데, 유통, 원단, 침장 디자이너, CEO,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중인 선배들이 참여했어요. 패션디자인도 분야가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한 명의 멘토에게 5명의 멘티가 연결되었는데, 후배들을 키워서 취업도 시키고 졸업 후 가이드라인을 주기도 해요. 그게 최선은 아니겠지만, 졸업한 선배들을 개인적으로 만나기는 힘드니까 이왕이면 동문모임을 할 때 후배들한테 뭔가 기여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어요.
Q 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소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세상에 대한 관심? 흐름을 파악하는 거죠. 그래서 신문을 보는 게 중요해요. 세계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가 어딘 줄 아세요? 도쿄에요. 그곳에는 8층짜리 명품 브랜드 건물이 있는데, 사람들이 ‘우리나라는 왜 3층밖에 안 되느냐’고 해요. 우리나라는 서울에 사는 인구가 1천6백만 명 정도니까 3층이면 충분해요. 도쿄에는 3천3백만의 인구가 살거든요.
사회적 배경 없이 디자인을,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디자이너라면 지금 이 현상이 왜 나타나고 있을까를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그 뿌리를 알아야 트렌드의 근본을 이해하게 되거든요. 세계사를 공부할 때 알게 된 사실인데, 아시아에 인구가 많은 이유가 ‘쌀’ 때문이라고 해요. 쌀이 밀보다 결과물이 많아서 더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고, 그 결과 수천년이 지나 아시아 인구가 많아진 거죠. 지중해에 철학자가 많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그곳은 날씨가 좋아서 밭에 씨만 뿌려두면 할 일이 없대요. 그래서 남는 시간 동안 생각하고 연구하다 보니 철학자가 많이 탄생하는 거죠(웃음). 우리나라가 빨리빨리 문화를 갖고 있는 것도 나쁘게만 볼 게 아니에요. 우리나라는 땅이 좁고 한번 농사를 잘못 지으면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니까 뭐든 빨리빨리 하려는 습관이 생긴 거예요. 《한국인의 의식구조》라는 책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비즈니스를 할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에요.
Q 인생 선배로서 국민대학교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능력이 있는 사람’과 ‘태도가 좋은 사람’ 중에 어떤 인재를 선호하느냐는 조사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99%가 후자를 택했다고 해요. 저도 비슷해요. 학교 다닐 때 뭔가를 맡는 건 굉장히 귀찮은 일인데, 그런 활동을 했던 친구들이 대부분 주변을 밝게 하고 기쁨을 주는 성향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포트폴리오만 열심히 준비해요. 하지만 저는 사회에 대한 관점, 직장에 대한 관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면접을 보러 오면서 우리 회사 규모나 매장 수도 모르고 오는 친구들은 반드시 떨어뜨려요. 그건 열의가 없는 거거든요.
인상학을 하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사람을 볼 때 피부를 제일 먼저 본다고 해요. 그 사람 피부를 보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요. 이 사람이 어떤 라이프스타일,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피부가 달라진대요. 예를 들어, 다크써클이 심하거나 피부에 뭐가 막 나면 자기 절제가 안되고 무책임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어떤 회사는 담배를 피우면 입사가 안 되는데, 매년 건강검진을 해서 니코틴이 나오면 퇴사처리를 해요. 건강도 삶에 대한 태도도 다 자기선택이에요. 몸과 정신에 나쁜 것을 선택하면서 내가 건강하길 바라는 건 안 되는 거죠. 제가 아프면 직원들한테 민폐에요. 그래서 저는 몸에 나쁜 것은 절대 하지 않아요. 제 의무는 우리 회사를 선택한 직원들이 자기선택이 옳았다는 걸 매일 증명해야 하는 거잖아요. 오늘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나라는 브랜드도, 내가 만든 옷도 달라진다는 걸 꼭 기억하세요.
김경희
1984, 국민대학교 의상학과 수석졸업
1984. 10. 대한민국 패션디자인 경진대회 가작 수상
1985. 10. 대한민국 패션디자인 경진대회 가작 수상
1983~1990 LG패션 숙녀복 근무
1991~1996 ㈜쌍방울(키이스, TWOc 디자인실장 역임)
1991. 8. 키이스 런칭
1996. 이화여자대학원 졸업
1997. ㈜한섬 (마인디자인 이사 역임)
1998. 1. 린 런칭
1999. 1. 라인 런칭
2001. 11. ㈜이니플래닝 창립
2002. 1. 리안뉴욕 런칭
2005. 3. 한국패션브랜드대상 수상
2006. 4. 한국패션품질대상 수상
2007. 12. 롯데베스트브랜드 수상
2009. 엘르 여성복 출시
2013. 11. 팝스애비뉴 런칭
2014. 8. T.PLANET 출시
이화여대 디자인 특강
동덕여대 숙녀복 디자인 특강
숭의여대 겸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