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불신투표 도입 주창 이색 이력… "공직자의 부·권력·명예 직업윤리 없는것" / 이호선(법학부) 교수

사전투표 위헌 헌법소원…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
본투표 17.5%, 사전투표 신뢰안해… 10년간의 실험이면 충분하다 생각
왜 투표용지에 '전부 불신임'없나 문제제기… 공사구분 철저한 법률가

 

 

이호선(59)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

 



"지금의 사전투표제는 고쳐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 투표자 중 17.5%가 '사전투표를 신뢰하지 않아서 당일 투표를 택했다'고 답했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10년간의 실험이면 충분합니다". "현행 헌법으로의 개정 당시 대법원에 두기로 했던 헌법심판 기능을 법원의 반발로 독일식 헌법재판소로 방향을 급선회해 부랴부랴 탄생했던 헌재가 존재하는 이유, 지금 헌법재판관들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호선(59·사진) 국민대 법대 교수는 지난 26일 헌재에 제출한 사전투표 제도 헌법소원심판청구서 말미에 이렇게 밝혔다. 지난해 3·9 대선 관외사전투표 참여자 자격으로 직접 청구인이 됐다. 2014년 지방선거 도입 후 전면 확대된 사전투표의 부작용을 재판관들이 법률가의 양심을 걸고 살펴달라는 취지다. "침해된 권리. 헌법 제1조 제2항 국민주권, 제10조 행복추구권, 제11조 제1항 평등권, 제24조 선거권, 제25조 공무담임권, 제37조 제1항 선거의 투명성 보장권, 제41조 투표등가성의 원리, 비밀투표의 권리 등이다".


그는 "실제 해킹이나 부정선거 논란과 별개로 국가기관이 특히 사전투표 과정에서의 기술적 위험성을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국가정보원의 선관위 시스템 보안점검 결과, 문제가 있었다는 국정감사 결과 등을 근거로 삼았다. '비밀투표 침해'는 이름·주소 등 개인정보가 식별 가능한 기표용지를 강요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사전투표가 시간차 '1차 투표'로 변질되면서 선거운동 종료 전·후 등 차이에 따른 표의 등가성,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일괄 전산조작'이나 '투표함 바꿔치기'가 뒤섞인 세간의 음모론과는 달리 국민주권 수호에 방점이 찍혔다. 이 교수는 현직 변호사(사법시험 제31회·사법연수원 21기)이자 전(前) 한국헌법학회 부회장으로 행동에 나섰다. 그의 헌법소원 경험은 처음이 아니다. 2005년 국민대 재학생 3인이 헌재에 총선 투표 시 '모두 다 싫다' 선택지를 넣어달라고 헌법소원을 청구한 적이 있다. 출마자 택일을 강제하는 건 주권침해이고, "정치인 자신들이 받는 평가를 분명하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느 정치세력에게도 던지지 않은 표를 개표결과에 반영해야 '실제 대표성'을 선출직들에게 각인시켜 권력 오·남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렸다. 여론조사상 무당층(無黨層) 비중이 정치혐오 정서 가늠자로 작용하는 것에 비춰볼 수 있다. 2005년부터 국민대 법대 강단에 선 이 교수가 "왜 우리 투표용지에 '전부 불신임'이 없나"라는 문제를 제기했고, 뜻을 같이 한 학부생들이 청구인으로 참여했다. 이 교수가 변호인을 맡아 일전(一戰)을 별렀지만 헌재는 '입법부 소관'이라며 선을 그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왜 우리가 차악을 강요당해야 하나. 후보란 맨끝에 '해당자 없음'이든 '전부 불신임'이든 칸을 만들면 투표율이 절로 높아질 거다. 투표장에 안 나가는 건 정치 무관심도 있겠지만 '저항의 표시'이기도 한데, (집계에서 빼) 정치적인 의사 형성을 막는 것"이라며 "헌재에선 '그건 입법자들이 할 사항이고, 정치적 표현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볼 수 없다'는데, 그러니 정치하는 사람들이 (투표율과 득표율을 곱해) 30% 남짓 지지로 '내가 대표성이 있다'며 온갖 악법을 만들지 않나"라고 말했다.


'불신임이 가장 많으면 어떡하냐'는 반론엔 "불신임 다음 2등이 뽑히면 된다. 불신임이 40%이고 30% 득표 후보가 국회의원이 된다면 '이게 민심이구나' 얼마나 겸손해지겠나"라며 "총선에도 대선에도 못 넣을 건 없다"라고 제안했다. 사전투표제 이야기로 돌아오면, 이 교수는 제도의 효력정지를 위한 별도의 행정소송도 동참자를 모아 추진할 계획이다. 본투표일과 달리 선거운동이 가능한 사전투표 기간 잘못된 정보에 기반해 투표했다면 이를 회수해야 한다고 여기는지 등 여론조사를 근거삼겠다고 했다.

 

 


이호선(가장 왼쪽)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를 비롯한 정교모(사회정의를바라는전국교수모임·PFJ) 지도부 등 소속 교수들이 지난 4월 워크숍에서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교수의 남다른 발상과 행동력은 과거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87항쟁 당시 대학원 1학년이었는데, 헌법개정 작업을 같이하던 교수님의 번역과 심부름을 도왔다"며 "헌법 초안엔 미국식으로 대법원이 헌법심판을 하도록 설계돼 있었지만 법원에서 '정치적인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며 반대했고,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모델로 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법원보다 낮은 위상에서 출발했지만 하나하나 파장이 큰 헌법재판을 다루며 높아졌다.


일개 법률가라도 사회를 바꿀 힘이 있다는 믿음도 있다. 영국에서 LLM(법학석사)을 한 이 교수는 "EU(유럽연합)법을 공부했다. EU가 원래 EC(유럽공동체)에서 출발했다"며 한 회원국 변호사가 EC로의 '주권양도'를 확인시킨 사례를 들었다. EC에선 단일시장 형성을 위해 국가보조산업 억제와 민영화 정책에 합의했는데, 이탈리아가 단독 입법으로 전력회사를 공기업화하자 한 변호사가 '전기요금 납부 거부' 소송을 했다. 갈등 끝에 EC 차원에서 각국의 '신법 우선 원칙'을 앞서는 경제정책 사법관할이 인정됐다.이 교수는 "분쟁을 해결하는 쪽이 힘을 갖게 된다"며 "법을 만드는 건 국회에서 싸우지만 나쁜 법을 없애는 건 법정에서 법률가들이 싸워야 한다. 떼로 달려들어서 할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 100명 모은다고 100학년 되지 않는다. 중학생 1명이 나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법률가들의 '고독한 결단'을 촉구한 그는, 헌재가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 입법의 절차상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효력을 상실시키지 않은 사건을 '정치적인 사건을 정치적으로 해결해 버린' 잘못된 선례로 짚기도 했다.


이 교수는 과거 사시 존폐 논쟁 속 '사법시험 존치론의 품격'이란 비판에 '사시 폐지론의 품격은?' 칼럼으로 반격한 당사자다. 그 자신이 '계층이동 사다리'로서 사시의 순기능을 경험한 당사자다. 이 교수는 강원 평창 출신에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 구미 전자공고에 입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뒀고, 서울 구로공단에서 일하며 독학해 국민대 법학과 특별장학생으로 진학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상황에서 모교 교직을 꿈꿨던 그는 지도교수로부터 사시 도전을 권유받았고 2년 내 합격해 법률가의 길을 갔다.


2019년 9월 '입시비리 내로남불' 논란의 조국 법무장관 임명 강행 사태로 '교수 773인 시국선언'과 함께 정교모(사회정의를바라는전국교수모임)가 출범할 때에도 이 교수가 주역이었다. 정교모는 현재 총 6000여명의 교수가 회원으로 참여해 있고, 회비를 내는 인원만 여전히 1000명을 넘는다고 한다. 이 교수는 국민대 기획처장에까지 올랐었지만, 당대 정권 비판성향이 강한 단체 활동을 위해 직을 내려놓았다. 공동대표 9인 일원으로 활동해왔으나, 올해부터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역시 내려놓았다고 한다.


정교모 분과 중 헌정법제위원장을 맡아온 이 교수는 지난 7월 권영준 대법관 인사청문회 정국 당시 공식 성명을 내, '5년간 18억원대 고액 로펌 의견서' 논란에 "'김명수 류(類)의 특정법 연구회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판사로서의 공정과 중립·윤리성이 저절로 보장되지는 않는다"며 결격 문제를 제기한 적도 있다. 그는 대법관을 비롯한 공직자들이 부·권력·명예를 '전부 가지려는' 모습을 보인다며 "다 자기 직업윤리들이 없어서 그렇다"고 일침을 가했다. 공사 구분이 철저하다는 게 그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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