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사건, 사고가 있는 곳에 뉴스가 있고 기자가 있으며, 방송이 있다. 우리는 쉽게 보고 듣지만 하나의 뉴스가 만들어지는데 수많은 이들의 땀이 녹아있다. 15년차 촬영기자로서 1997년 괌 KAL기 추락 사건부터 최근의 연평도 포격 사건까지. 급박한 뉴스의 현장에 그가 있었고, 그가 있는 곳에 뉴스가 있었다. 역사를 기록하는 촬영기자, KBS 보도국 박진경 동문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Q. 기계설계라는 전공과 촬영기자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요, 어떤 계기로 촬영기자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A. 대개의 학생들이 그렇듯 저 역시 별 생각 없이 기계과에 들어갔고 남들과 같이 학교를 졸업한 후 대기업에 입사했어요. 그러던 중 미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무작정 간 뉴욕에서 우연히 언론 대학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방송 제작의 여러 분야를 배우며 촬영기자가 저에게 가장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귀국 후 아리랑TV에서 일을 하다 현재 일하고 있는 KBS에 입사하게 되었어요.
Q. 보통 일반인들은 촬영기자와 카메라맨의 차이에 대해 잘 모르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A. 촬영기자는 뉴스, 보도 분야를 촬영하고 직접 편집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초상권 등의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직접 책임을 지지요. 뉴스 외에 드라마, 쇼, 예능 프로그램 등을 촬영하는 분들을 통틀어 카메라맨이라고 합니다.
Q. 보도국은 늘 분주하고 정신없을 것 같은데 촬영기자의 하루 일정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A. 처음 회사에 입사하면 신입기자들은 데일리뉴스팀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자주 접하는 9시 뉴스나 정오 뉴스 등 매일의 소식을 전하는 기자로서 활동하게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무척 바쁜 일상을 보내게 됩니다. 후에 미디어비평, KBS10 등과 같은 시사 기획 프로그램을 맡게 되는데 특집부의 성격 상 국내외 출장이 매우 잦습니다. 데일리팀이든 특집부든 촬영기자는 보통 분주하게 산다고 보면 될 것 같네요.
Q. 15년 차 기자이신데 그 사이에 사회도 많이 변했습니다. 요즘 입사하는 후배들과 당시 선배님의 모습을 비교하자면?
A. 확실히 요즘 친구들은 우리 세대보다 교육 방식이 시스템화 되어있는 것 같아요. 밖에서 어떤 일을 하다와도 조직에 어렵지 않게 적응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갖춰야 할 능력들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당시 제가 갖고 있던 열정과 반짝이는 눈을 요즘 친구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어요. 물론 저처럼 어리숙하기도 하고요.
Q. 정말 많은 사건들을 취재하셨는데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인가요?
A. 아무래도 입사 초기에 취재한 괌 KAL기 추락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보도국에서 당시 제가 경험이 많지 않은 기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저를 보내셨어요. 제가 한국 언론 대표로 기체 상황 등을 촬영해서 국내외 모든 방송국들에 제공을 했습니다. 그 와중에 위령제를 지내는데 한 어머니가 사고로 사망한 딸 이름을 부르며 “엄마라고 한 번 불러봐”라고 말하더군요. 그 분의 절규를 듣는데 눈물이 계속 흘러 도저히 촬영을 할 수가 없더군요. 초년 기자로서 사건사고 현장을 다니는 것이 임무였기 때문에 경험한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들이 기억에 가장 남습니다.
Q. 사실 쉽고 편한 취재는 없을 것 같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취재 경험을 꼽으신다면?
A. 힘들지 않았던 취재를 물어보는 게 빠를 것 같네요. 그만큼 제가 취재하는 일들 중 무엇 하나 쉬운 사건이 없습니다. 작년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 저는 포격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 포진지를 촬영하라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임무를 받을 당시 정말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황당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갔습니다. 섬에 도착해 현지 우체부 어르신에게 비밀 길을 알아내 군사시설을 피해 몰래 들어가 결국에는 촬영을 했죠. 분위기도 분위기고 날씨도 너무 추워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추위에 떨며 숨어서 촬영하는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제 임무를 완수했을 때의 보람은 매우 컸습니다.
Q. 역시나 보람이 정말 큰 직업 같아요. 그렇다면 언제 가장 큰 보람을 느끼시나요?
A. 기본적으로 촬영기자의 속성은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입니다. KBS와 같은 공영방송에서 기록하는 역사가 대중에게 알려진다는 것 자체가 큰 보람입니다. 특히 영상으로 국민에게 역사적 사건들을 전달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 큰 보람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Q. 언론인으로서 선배님께서는 어떠한 신념을 갖고 계신가요?
A. 일단 공영방송의 촬영기자라는 책임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입니다. 비단 저만이 아니라 민간 언론이 아닌 공영방송의 모든 기자들은 민간 언론보다 더 큰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촬영기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요?
A. 요즘 입사 면접을 보면 토익 만점 등의 스펙을 가진 친구들이 많습니다. 개개인이 갖춘 능력과 면면들도 화려하고요. 그렇지만 전 개인이 갖춘 스펙보다는 그 개인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진부하지만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진지한 자세, 그리고 성실성이 가장 중요하죠.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기 때문에 면접을 하며 몇 마디만 나누면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스펙을 갖춘 인간이 아닌 따뜻하고 진지한 인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구체적으로 촬영기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A. 사실 촬영기자들 모두가 방송과 관련된 전공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비전공자들이 더 많을 정도에요. 그 다양한 이들이 비전공자들이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각자가 가진 지식과 능력으로 자기만의 분야를 만들어 가는 거죠. 모두가 굉장한 수준의 전문가들이지만 서로 같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촬영기자가 되기 위한 방법이나 스펙이 있다기보다는 열정과 호기심을 갖추고 자신만의 특성과 강점을 만들어 가야하겠죠.
Q.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창 시절의 선배님 모습이 정말 궁금합니다. 어떤 학생이셨나요?
A. 저 역시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놀기 좋아하는 학생이었습니다. 1학년 때는 과대도 했었고, 학교 근처에서 술도 많이 먹었지요. 의상디자인학과의 여학생들과 어울려 놀기도 했고요. 당시에는 대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던 시기였기 때문에 데모를 하던 기억들도 생생합니다.
Q. 졸업한 지 20년이 지났는데 가끔 학교 생각도 나실 것 같아요. 당시와는 많이 변했는데 졸업 후에 학교에 간 적이 있으신가요?
A. 질풍노도의 20대 시절을 보냈던 학교에 대한 향수, 애착이 없을 수 없겠지요. 사실 아름다운 교정의 모습보다는 민주화를 요구하던 데모를 하던 학교의 모습이 더 익숙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도 행복한 추억들이에요. 시위를 하며 총장실에서 ‘점거’라는 이름으로 하룻밤을 보낸 기억도 있네요. ‘점거’ 보다는 그냥 하룻밤을 잤다고 표현해 주세요.(웃음) 졸업한 후 학교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조만간 꼭 한 번 가봐야겠네요.
Q. 국민대학교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얼마 전 유행한 산수유 광고가 생각나네요. 정말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도 한마디 하자면 세상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딱 맞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차분히 기다리고 돌아보면 어느 순간에 그 일들을 이해하는 순간이 옵니다. 하고자 하는 일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다보면 언젠간 이루어질 겁니다. 저만 해도 중간에 포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으니 후배들에게 조언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온 것 같아요. 포기하지 말고 꿈 꾸기를 포기하지 말고 전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