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천고마비의 계절, 절로 마음이 풍성해지는 이 때, 토슈즈를 신은 춘향이가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춘향'이라는 이름을 마주하면 한복 저고리에 비녀로 머리를 올리고 어여쁜 꽃신을 신은 모습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다소곳한 자태와 일편단심 애틋한 순정이 춘향의 대표적 이미지다. 그런 춘향이가 국민*발레를 만나 조금은 색다른 모습으로, 더욱 애절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지난 9월 25-26일 이틀에 걸쳐 세종문화회관에서 펼쳐진 국민*발레 춘향, 연습기간부터 공연 당일까지의 생생한 재미와 감동을 물씬 다같이 느껴보자.
예술관, 지하로부터 새어나온 한 줄기 음악소리가 발걸음을 잡아끈다. 이윽고 계단을 내려갈수록 점차 유려하고도 웅장한 소리로 탈바꿈하며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느낌을 풍긴다. 소리를 따라 다다른 곳은 국민*발레 춘향의 연습실. 공연에 출연하는 대부분의 인원이 모여 전체 연습을 하고 있었다. 지도 교수님들의 입회 하에 펼쳐진 총연습. 연습이란 말이 무색하게 다들 진지한 자세로 임했다. 표정에서부터 손끝 발끝의 섬세한 신체 연기까지 배우들의 연기는 실제 무대를 방불케 했고, 감독하시던 교수님의 정확한 코치가 내려질 때마다 무대는 완벽에 완벽을 더했다.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문득 한복과 토슈즈, 부채춤과 발레가 한 데 어우러져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국민*발레만의 힘은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춘향의 안무를 맡으신 문영 교수님을 만나 국민*발레 춘향에 대해 더 자세히 들어보았다.
Q. 국민*발레 춘향은 '어떤 공연'인가요?
A. 본래 춘향은 1999년에 전자음악으로 하던 개인작업이었는데 국민대에 교수로 부임하게 되면서 주변 교수님들의 독려와 도움으로 이렇게 큰 작업이 되었어요. 김경중 교수님은 국민*발레 춘향을 위해 처음 발레 음악에 도전하셨고 무려 2년이라는 시간동안 몰두하셨죠. 그렇게 탄생된 곡을 김훈태 교수님께서 지휘하시고 국민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라이브로 연주해요. 국민대 졸업생들과 현재 공부하고 있는 학부생들이 출연하고 이미영 교수님께서 월매 역을, 김선수 교수님께서 변사또 역을 맡아 열연하고 계시죠. 그 외 공연 모든 부분들이 국민대에서 만들어졌어요. 2005년 국민대버전으로는 초연을 하게 되었고, 2010년엔 오페라하우스에 대학 최초로 한 대학의 구성원들로만 이루어진 공연을 올렸어요. 세 번째인 이번 공연에서는 보다 다양한 연출과 드라마틱한 요소를 첨가해서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게끔 보완했어요. 국민대학교 예술대학이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예술을 아우르는 복합공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무용이라는 총체성을 지닌 예술을 온전히 한 개의 대학 안에서 해낸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자 그 자체로 경쟁력을 갖추는 셈이에요. 그래서 국민*발레라는 명칭이 붙여졌고, 지금 춘향은 명실상부한 Made in KOOKMIN contents로써 손색없지요.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 들여온 발레라는 예술에 우리 문화, 우리의 것을 용해시켰다는 점에서 세계인이 함께하는 글로벌 상품으로써의 가치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Q. 공연 중 유독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으신가요?
A. 흔히들 '춘향'하면 많은 분들이 이몽룡과의 사랑이나 감동의 재회 등을 눈여겨 보실 텐데 처음 공연을 제작할 당시부터 춘향이 갖고 있는 다른 사랑 얘기를 다루고 싶었어요. 변사또가 그 중심인물이죠. 서양 발레 속 단순한 갈등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제3의 인물과 변사또는 차이가 있어요. 춘향과 이몽룡의 만남, 이별, 재회, 결혼까지 전반적인 갈등 구조를 야기시킨 것은 변사또였고 그의 사랑 역시 춘향과 이몽룡 못지않게 진실한 부분이 있어요.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춘향에게 쏟아내는 변사또의 절절한 절규과 그의 수청을 거부하는 춘향의 통고, 두 사람의 pas de deux(흔히 발레에서, 두 사람이 추는 춤)를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어요. 관객분들께서 유심히 지켜봐주셨으면 하는 장면이지요.
Q. 오랜 시간 함께 공연을 준비해 온 학생들에게 격려의 말씀 부탁드려요.
A. 훌륭한 안무, 연출, 음악이 있는 그 아무리 대단한 작품이라도 현실화되고 관객들과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건 마지막 순간에 무대에 서는 무용수들이에요. 그 중요한 역할을 맡아준 학생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해요. 1년이 넘도록 작업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때론 혹독하게 밀어붙이기도 했는데 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여준 학생들에게 정말 고맙고 대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나를 보던 신뢰에 찬 눈망울들은 엄청난 감동을 주었고, 다 같은 마음으로 달려왔기에 지금의 국민*발레 춘향이 가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공연이 끝나고 나면 나도, 학생들도 새로운 산을 보고 있으리라 기대되네요.
공연은 성황리에 치러졌다. 공연 시작 전부터 세종문화회관의 넓은 홀이 관객들로 북적였고 층층이 객석은 가득 찼다. 화려한 무대와 깊이 있는 연기에 장내는 숨죽인듯 고요했고 막이 바뀔 때마다 감탄과 함께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구나 알듯이 춘향과 이몽룡의 성대한 결혼, 행복한 결말로 공연은 끝나고 출연진들은 진심어린 인사를 건넸다.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들뜬 표정의 관객들은 무대를 향해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야말로 '국민*발레'라서 더욱 진한 기쁨과 감동을 선사한 이번 공연은 두 가지 메시지를 전달한다. 국민대학교 예술대학이 가진 경쟁력과 위상이 그 첫 번째이고, 앞으로 있을 제2, 제3의 국민*공연의 눈부신 미래가 두 번째다. Made in KOOKMIN contents의 활약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