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낮 동안 잘 익은 빨래가 주인을 기다린다. 멀리서 들리는 인기척에 쫑긋 귀를 세우지만, 밤이 오는 길목을 쓰는 바람 소리뿐. 나는 아무렇지 않지만 지친 옷가지는 어느새 그리움에 젖어간다.' 누군가를 또는 누군가의 연락을 간절히 기다려본 적이 있나요? 기다림은 조그만 인기척에도 귀를 쫑긋, 작은 소리에도 온 신경을 쏟게 만든다. 국민대 회화과 졸업생 강예신 작가가 펴낸 감성에세이 <한뼘 한뼘>은 우리가 공감할만한 감성으로 가득 차 있다. '백설 공주에 나오는 거울이 마녀에게 하얀 거짓말을 했더라면?'하는 엉뚱한 상상과 그 속에 담긴 따뜻한 진심, 주인을 기다리는 빨래의 그리움, 나도 알지 못했던 그 시절 나의 사용설명서 등은 시험 준비와 과제로 지쳐있는 국민*인들의 마음에 잠시나마 위로를 건넨다. 잊었던 감성들로 나를 한 뼘 더 자라게 만들고, 진심으로 독자들에게 한 뼘 더 다가가는 강예신 작가만의 작품세계를 만나보자.
졸업 후에 여기 저기 포트폴리오를 제출한 끝에 Daum 한남동 사옥에서 전시를 하게 됐어요. 그 인연으로 Daum 스토리볼에 <강예신의 토닥토닥>을 연재하게 됐죠. 다음 스토리볼은 삽화에 아주 짤막한 글귀들이 들어간 형식이었는데 요새 긴 글을 잘 안 읽는 추세여서 짧은 글들이 더 잘 읽혔던 것 같아요. 스토리볼이 인기를 얻으면서 좋아요 공감수가 1만 6천 여개, 구독수도 1290명 정도 됐는데 저한테는 실질적으로 와닿는 숫자가 아니어서 실감을 못했었어요. 저는 그런 숫자보다도 가끔 '위로를 받았다'는 댓글 같은 것들이 올라오면 뿌듯하고 기분이 좋더라고요.
<한뼘 한뼘>은 9월에 출간된 그림 에세이예요. 그동안 시각적 이미지로 이야기를 전달했다면, <한뼘 한뼘>에서는 이미지에 텍스트를 더해 대중들과 보다 폭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었어요. 현대사회가 숨 가쁘게 돌아가는 만큼 사소한 것들에 더 무심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독자들에게 거창한 깨달음을 주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느끼는 소소한 감정들에 주목하고 싶어요. 버스나 지하철이나 가볍게 읽은 구절이 일상 속에서 잠시라도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집필하게 되었죠.
어릴 때 심심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보니 생긴 습관인 것 같아요. 집에 혼자 있을 때 벽에게 말을 걸거나 사물을 의인화 해보기도 했던 것들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집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빨래의 마음은 어떨까, 인형과 대화할 때는 무슨 얘기를 나눌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들을 작품으로 쓰게 됐어요. 재밌잖아요. 시각을 바꿔서 생각해보는 게 재밌는 것 같아요.
돌고래나 토끼털에 관한 이야기들도 제가 동물 애호가이거나 동물을 특별히 좋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생물들에 대해서 너무 무책임하진 않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쓰게 되었어요. 우리가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윤리에 대해서요. 어떻게 보면 우리도 동물인데 다 같이 잘 지낼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라는 식의 무책임한 행동들도 있지만 무심코 하는 행위들이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조금만 더 세심하게 신경 쓴다면 모두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어릴때부터 그림을 그리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회화과로 진학하게 되었죠. 하지만 그 길 위에서 ‘아, 이게 정말 내 적성에 맞는 일이구나. 정말 내가 하고싶은 일이 이거구나’라고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작업하는 시간이 모두 즐거웠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예요.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에너지를 많이 소비해야하는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노력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내 작품이 탄생했을 때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더라고요. 그 때 내가 그림그리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만큼 내가 살고 싶은 인생, 진로를 정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많은 고민이 필요하고 어려운 결정인 것 같아요. 사람이 가장 행복해지는 길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 아닐까요. 그 다음에는 열심히만 하면 되는거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분명 보람이 느껴지는 날이 올거예요.
늦게 시작한 만큼 2,3배로 과제나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으니까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보면 비슷하게나마 서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그러지 않았을까요. (웃음).2010년에 졸업 한 후에도 회화과 교수님들과 지속적으로 연락하면서 가끔씩 찾아뵙고 있어요. 교수님들께 도움을 많이 받았죠. 제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스승님들이세요. 학부 때는 과제가 너무 많아서 힘들었지만 그런 시간들이 제게는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그 때 드로잉이나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졌죠. 정말 감사해요.
사회에 나오면 나보다 훨씬 뛰어나고 멋진 사람들이 정말 많을 거예요.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어요. 그냥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거예요. 멀리서 보면 원래부터 잘하는 사람 같겠지만 아마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분명히 천배, 백배 달리고 열심히 했을 거예요. 내가 그 정도로 잘하고 싶으면 그 사람보다 열심히 하면 되겠죠. 미리 기죽어서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20대 때는 1,2년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그런 경험들도 훗날 자산이 될 수 있거든요.
저도 처음 사회에 나와서 정말 좌절했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나보다 잘 그리는 것 같고 책에서도 천재같이 느껴지는 예술가들이 한 둘이 아니잖아요. 이 사람들 틈에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죠. 그렇지만 저는 '성실함'이라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어요. 결국은 성실함이 다른 재능들을 따라잡는 것 같아요. 마지막에 가서 재능의 힘 1%를 가지지 못하더라도 그 직전까지는 열심히 하는 것만이 답인 것 같아요.
저도 다른 사람의 책이나 친구들과의 수다로 위로를 받아요. 어떤 때는 코미디 프로가 위로가 될 때도 있죠. 그 중에서도 저는 친구랑 갔던 여행들이 긴 시간동안 제게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그 추억이 10년 넘게 남더라고요. 저는 자연적인 장소들을 좋아해요. 산, 들, 바다 그런 곳들이요. 저는 낚시하는 것도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런 장소들에 가서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껴요. 산에 올라가서 느끼는 공기도 좋은 것 같아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면 환기도 되고 힐링도 되고 그러거든요. 여행을 가면 사진을 찍는 것보다 내 마음에, 머리에 남기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이 이미지는 꼭 그려야겠다!' 하면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냥 그곳에서의 시간을 즐기는 편이예요. 프레임으로 보는 것과 진짜 내가 봤던 것들이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막상 사진으로 찍어도 잘 찾아보진 않게 되더라고요. 저한테는 감정을 기억해두는 편이 더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가장 최근에는 <한뼘 한뼘> 출간 기념으로 <홀가분>이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열었었어요.
드로잉 위주로 전시를 꾸몄고 페인팅을 포함해 50여점의 그림을 전시했죠. 사실 전시회라는게 '나는 이런 작업을 했고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걸 보고 가는 당신 위로를 받고 갔으면 좋겠어요. 일상을 벗어나보세요.' 이런 의미예요. 즐겁게, 재밌게 보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그림을 사시는 분들에게 제 그림이 행운을 가져다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리는 거죠. 내가 이 그림을 그리면서 힐링을 경험하고 치유 받았듯이 보는 사람들도 좋은 기운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예요. 특히 블로그 통해 오는 분들이 '이 이야기에 정말 공감했어요. 위로가 됐어요.'라고 하시는 말을 들으면 책임감을 느껴요. '제가 누구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친구처럼 이야기 한 건데 오해하시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종종 하는데 제 의도가 잘 전달되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 강예신은 지난해 2013 서울 오픈 아트페어에서 새로운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기대되는 신진작가 6명에 선정되기도 했다. 길을 가다 우연히 들린 노래 하나가 지친 하루를 위로해주듯 자신의 글과 그림이 작은 위로를 건넬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그녀. 이번 감성 에세이 <한뼘 한뼘>도 동화적 이미지와 따뜻한 내러티브로 많은 지친 현대인들에게 작은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2009년부터 개인전을 열어온 강예신 작가는 자신만의 토끼 캐릭터로 출판, 모바일 서비스 컨텐츠, 에카 프로젝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쉼 없는 발전은 없다.' 많은 과제와 시험으로 지친 국민*인이라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강예신 작가의 토끼가 건네는 작은 소리에 귀 기울여보는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