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지친 마음에 위로를 던지다, 벽화 이야기
박종수 15.04.09 조회수 8395


고개를 숙인 채 빈자리 하나 없는 버스에 오른다. 학교가 목적지인 전쟁 같은 여정은 온몸을 피곤하게 만든다. 빡빡한 수업과 넘치는 과제는 목을 조르고, 곧 있으면 다가올 시험기간에 깊은 한숨만 나온다. 가끔은 천천히 걸으면서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싶은데 주위에는 도무지 마땅한 장소가 생각나지 않는다. 이렇게 국민*인의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줄 학교 주변만의 특별한 장소가 있다. 교내 후문부터 정릉시장까지 이어진 벽화. 누가 그랬던가, 예술은 마음에 위안을 준다고. 조용한 정릉 길을 걸으면서 아기자기한 벽화가 넌지시 건네는 위로의 말을 들어보자. 지친 발걸음이 어느덧 평온함을 되찾을 것이다.




벽화는 한곳에 모여 있지 않다. 높은 벽에 있어 모르고 지나치는 곳이 있는 반면 골목 입구에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곳도 있다. 주택가에 홀로 그려져 있는 벽화도 있고 음식점 앞에 식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벽화도 있다. 골목길이 많아 칙칙하게 보일 수 있는 정릉을 환하게 밝힐 수 있는 벽화는 관심을 두고 눈을 돌리면 어디에나 존재한다. 시간 관리 어려운 현대 시대에 맞춰 코스를 나누어 소개한다. 소요시간 약 30분인 A코스와 1시간인 B코스. 각자의 시간에 맞춰 벽화 속으로 떠나보자. 




교내 후문으로 나가 터널 방면으로 올라가면, 계단이 많은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거기서부터 A코스가 시작한다. 위 지도의 자주색 표시는 벽화가 있는 구체적인 위치이다. 벽화는 집중적으로 모여 있지 않고 여러 곳에 있으므로 표시를 확인하지 않으면 모든 벽화를 감상하기 어렵다. 창문으로 도망치는 코끼리와 종이컵에 쏟아지는 인스턴트 커피 등, A코스에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벽화가 많다. 또한 A코스는 내리막길로 시작한다. 그러나 내리막길은 되돌아올 때 오르막길이 된다. 같은 길이라도 내리막길이 오르막길이 되고 오르막길이 내리막길이 되듯이, 자신이 가는 길이 오르막길이라고 절망하지 말자. 다음번에 그 길은 당신에게 내리막길이 될 수도 있다.

 


단순히 글로만 설명하는 전공 서적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작은 그림이 보충 설명한다면 복잡한 지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벽화에도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보기 좋게 만든 짧은 문구는 그림보다 강한 인상을 남긴다. ‘관심과 연필심은 마음을 전할 수 있다. 문제는 항상 무관심이란 녀석이다.’ 때로는 간단한 문장이 마음을 울린다. 감정이입 되는 것이 가장 먼저 보이듯이, 감정을 그대로 풀어쓴 문장이 시선을 잡아끈다. 풍선처럼 불어 오른 마음은 바늘 같은 벽화에 찔려 그동안 숨어 있던 감정을 터트린다. 벽화가 말을 건넨다. 

 


B코스는 교내 후문을 지나 정릉시장까지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 정릉시장의 중심가에서 다리를 기준으로 오른쪽과 왼쪽 양쪽에 모두 위치한다. 구체적인 지리를 모른다면 B코스의 모든 벽화를 보기 어렵다. 그만큼 많은 벽화가 골목길 사이사이에 숨어 있다. 위 사진을 참고하여 구체적인 위치를 확인하자. B코스의 아기자기한 벽화는 동화 속 주인공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언제나 용감하게 미지의 세계를 모험하는 주인공처럼 알 수 없는 미래에 쉽게 낙담하지 말자. 고개를 들고 멀리 바라볼 수 있다면, 비바람이 몰아쳐도 언젠가는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원래는 밋밋한 흰색 벽으로 태어났다. 강렬한 붉은색이 무지개를 이루고, 짙은 초록색은 봄을 노래한다. 우스꽝스러운 갈색의 기린은 진지한 표정으로 벽화를 그리고 있다. 또한 황금빛 날개는 지나가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어느 유명한 날개 벽화처럼 그 앞에 서서 포토타임을 갖는다. 벽에 그려진 그림 한 조각에 그동안 힘들었던 고민이 잠시나마 머릿속을 빠져나가는 것 같다. 죽을 만큼 괴로운 고민이었는데, 이렇게 쉽게 잊을 수 있다니. 때로는 자리를 박차고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나가는 것도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벽화를 그리고 있는 기린 벽화라니. 내가 그린 기린 그림보다 확실히 생생한 느낌이다. 




▲ 창의력이 돋보이는 B코스 벽화들


“이건 너무 얌전해. 이건 너무 과감해. ㅡ 하상욱 「노래방 선곡」 中에서. 시인 하상욱은 짧은 시로 대중의 공감을 받았다. 단순한 네 줄 혹은 여섯 줄의 시는 모두의 일상을 노래했다. 어떤 이는 저렇게 짧은데 시가 될 수 있는가 의문을 품지만, 예술은 예술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나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창의성은 일상에서 시작된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벽화를 그릴 수는 없지만, 작은 변화라도 밋밋한 일상에 충격을 가해보자. 당연하다는 것을 당연하지 않게 표현한다면, 당신도 예술가이다. 
 

 

모든 일에는 에티켓이 필요하고, 벽화는 주로 주택가에 위치한다. 공강 시간에 벽화를 찾는 국민*인에게는 벽화감상은 한순간의 유희이지만, 정릉 주민에겐 일상이다. 바람처럼 떠나는 나그네 같이 조용히 관람하자. 또한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에 좌절하지 말고 편한 신발을 준비하자. 산은 힘들게 오른 이에게만 경치를 허락한다고 한다. 벽화도 마찬가지다. 힘겹게 찾은 벽화가 나에게 큰 위안을 줄 수 있다. 굴곡이 많은 오르막길에 숨어 있는 벽화가 많다 보니 편한 운동화를 신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위안을 준다고 하지만 벽화를 본다고 고민이던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하지만 상담의 본질도 들어주는 것에 있듯이, 벽화를 보고 지친 마음을 잠시나마 위로받을 수 있다. 붕 뜨는 공강 시간에 벽화를 찾아가 보자. 복잡하고 바쁜 일상에 생기를 안겨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