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꿈을 연기하다, 연극 동아리 '판갈이'
박종수 15.05.03 조회수 11679

소파에 누워 가족이 함께 드라마를 본다. 잘생긴 남자 배우와 어여쁜 여자 배우는 로맨틱한 장소에서 사랑을 나눈다. 저긴 어딘데 저렇게 예쁘지? 의문이 생기는 찰나 남자 배우의 사랑스러운 속삭임을 듣고 여자 배우는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분명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랑 장면이었으나 보는 내내 마음 한 곳이 허전하다. 어째서 이렇게 허전한 것일까. 남자 주인공의 발음이 새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일까. 여주인공의 시선 처리가 불안전해 보여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과는 다르게 비정상적으로 환하게 만드는 조명 탓일까. 조그맣던 고민은 어느새 확고한 각오로 변한다. “아오, 답답해. 차라리 내가 하면 더 잘하겠다!”

자신만만하게 벌떡 일어나서 외쳤지만, 막상 어디서부터 배우의 길을 시작해야할지 알 수 없다. 조명은 어느 위치에 설치하고 대본은 누가 작성하는지. 하나씩 차근차근 배우고 싶은데 도통 도움을 청할 곳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중앙 연극 동아리 “판갈이”는 이러한 고민을 단숨에 날려버린다. 연기에서부터 연출까지. 너의 숨은 잠재력을 하늘 끝까지 올라가게 도와주리라. 중앙 연극 동아리 “판갈이”를 소개한다.


중앙 연극 동아리 “판갈이”는 올해로 26년째 명맥을 이어오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동아리이다. “판갈이”는 연극 동아리에 걸맞게 연기에서부터 연출까지 스스로 자신만의 무대를 완성한다. 그 외에도 소품팀, 무대팀, 조명팀, 음향팀 등이 공연을 이끈다. 무대 세트는 동아리 재산의 일부분으로 옛날부터 사용해온 장비를 재구성하거나 필요한 소품을 구매한다. 또한 이번 공연에서 사용한 나뭇가지는 교내 주변을 돌아다니며 실제로 떨어져 있는 것을 구해온 것이다.

매년 봄바람이 휘날리는 4월이 되면 “판갈이”는 공연을 선보인다. 겨울방학에도 강행한 연습과 훈련으로 수준 높은 무대를 완성하는 동시에, 새로운 동아리 회원이 된 신입생에게 간접적으로 무대를 경험할 기회를 준다. 무대 위에서 많은 관객을 향해 그동안 갈고 닦았던 실력을 보여준다.

 

15년도 4월의 공연 제목은 ‘보물찾기’이다. 공연은 두 명의 배추 장수가 경찰서에서 진술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두 사람의 진술은 다르고, 경찰은 이를 수상히 여긴다. 그들은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진실에 가까워지고, 숨 막히는 긴장감은 관객을 사로잡는다. 연극계에 있는 기존의 대본을 각색하여 “판갈이”만의 새로운 극으로 탄생시켰다. 일반적으로 연극에서는 각본과 연출을 완성한 후 알맞은 자리에 배우를 넣는다. 그러나 공연 ‘보물찾기’는 네 명의 배우의 특성에 맞춰 극의 연출과 각본을 완성했다. 각각의 배우의 특징과 장점을 최대한 살린 공연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멋진 무대를 완성했다.

 

 

예로부터 연극 동아리에는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연출가는 주변을 훑어보았으나 이를 찾을 수 없어, 옆에 있는 배우에게 물어보았다. 이에 대해 “그런 사람은 아무래도 없다. 우리는 연기력으로 승부한다.”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배우 박성찬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잘생겼다기보단 연기력이 뛰어날 것 같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활약한다면 연출은 뒤에서 모든 것을 감독한다. 실력 있는 ‘판갈이’의 메인 연출가 곽주환과 배우 박성찬을 만나보았다.

Q. ‘판갈이’에게 연출이란?

곽주환: 연극에서 연출은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연기자와 무대 소품, 각본까지 모든 것을 종합하여 총괄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연출이 부족하면 온전한 공연이 되기 어렵다. 따라서 연출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대사부터 표정과 상황까지,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대본을 만든다. 새롭게 만들기도 하고 기존 연극의 대본을 차용하여 각색하기도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것이라서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면서 천천히 머릿속에서 공연을 그리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무대를 완성할 수 있다. 올해 첫 공연인 ‘보물찾기’는 여성 배우 없이 남성 배우만으로 재구성한 연극이다. 큰 흐름을 기준으로 새로운 주제를 더해 나만의 연출을 더했다.

Q. 연극 동아리에 영감을 받아 현재 배우나 연출의 길을 걷고 있는 선배가 있나요?

동아리에 영감을 받아 이쪽 분야로 활동하는 분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01학번 원성민 선배와 00학번 오륜구 선배가 있다. 원성민 선배는 극단의 무대감독이고, 오륜구 선배는 더 뮤지컬 창립멤버이다. 작은 관심으로 시작한 연극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다.

 



Q. 연극 동아리에 참여한다는 것이 간단하게 보이지 않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연기를 배울 수 있나요? 처음 들어온 부원은 어떤 체계적인 방법으로 연기를 배우나요?

박성찬: 처음 연극을 접하면 어색할 수 있다. 무대 위에서 관객과 소통하면서 공연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계적인 연습으로 기초를 다져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여도 꾸준한 훈련으로 불가능한 것은 없다. 대표적인 연습 방법은 발성, 감정 연습, 발음, 독백이 있다. 공연에서는 목소리가 작으면 뒤에 앉은 관객은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 대화하듯이 말하되, 목소리가 공연장 끝까지 닿게끔 발성을 배운다. 감정 연습은 특정 극의 대본을 뽑아오거나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감정을 넣는 연습을 한다. 발음은 가장 고치기 어려운 부분으로, 개인의 절실한 노력이 필요하다.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동아리 부원이 어떤 곳에서 어눌한 발음이 나오는지 알려주고 고쳐준다. 독백은 극의 독백 대본을 뽑아 무대 위에서 감정을 잡고 대사를 읊는다. 이러한 네 가지 방법으로 연극을 처음 접하는 신입생도 시간이 지나면 수준급의 배우가 된다. 연기가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Q. 배우는 연기에 너무 몰입하다보면 그 배역에 심취할 때가 있다는데, 실제로 연기에 너무 몰입하여 일어난 일이 있나요?

박성찬: 연기에 몰입하여 자신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바로 연인 역할에 있던 배우들이 공연이 끝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극 중에서 티격태격하던 연인은 사귀고 나서도 티격태격한다. 반면 극에서 불미스런 이유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연인은 공연이 끝나고 실제 연인관계에서도 하루도 떨어져 있지 않는다. 사랑 연기에 몰입하여 사랑에 빠졌던지, 이전부터 사랑에 빠진 사이였던지에 관계없이 이들의 사랑은 진심이다.

 

 

"살면서 무대 위에 오를 기회가 몇 번이나 될까. 어둠 속에 가려진 관객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본다. 눈빛만으로 그들의 마음을 끌어당겨야 한다. 조명은 나를 비춘다. 긴장했는지 온 몸이 땀으로 젖는다. 무대가 끝나고 조명이 꺼지자, 억지로 붙잡았던 다리는 긴장이 풀리면서 후들거린다. 관객은 어둠 속에서 나에게 박수를 던진다. 뿌듯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의 박수를 받아 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감사하다며 관객에게 인사를 한다. 다시 한 번 박수와 환호를 받는다. 성공이다. 인생에서 성공은 이런 게 아닐까, 감히 생각한다."  ㅡ 고민준(기계시스템공학부 11) 「작년 어느 날 공연을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