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요즘 젊은 예술인들 사이에서 연남동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가로수길, 경리단길보다 핫하다는 그 곳 연남동 전체를 전시장으로 삼은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기획전 「신장개업」이 10월 9일 금요일부터 10월 15일 목요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기획전은 31명의 학생 디자이너들이 자기 상품을 파는 사장님이 된다는 독특한 콘셉트로 관람객과 콘텐츠를 공유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획전 「신장개업」은 눈으로 보기만 해야 하는 기존의 일방적인 전시 형식을 벗어나 관람객이 직접 디자인을 만지고 사용해볼 수 있는 파격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신장개업」은 기존의 졸업 전시를 탈피하기 위한 시각디자인학과의 세번째 노력이다. 2013년도 기획전 「쓸만한 구석」을 시작으로 전시 형태와 기획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시도해오고 있으며 명칭 또한 졸업 전시가 아닌 기획 전시로 바꾸었다. 이전의 '졸업전시'는 교수님들에게 위를 청구하기 위해 제출했던 그래픽 작업(졸업 작품)을 그대로 전시했던 것에 그쳤는데 이 전시가 전공자가 아닌 관람객들에게 불친절하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현대미술처럼 심오하면서도 촉수불가한 아우라를 뿜는다. 그래서 문제 제기에 대한 그래픽 해결책에 그치지 않았다. 관람객에게 콘텐츠를 체험하게 하고 퍼포먼스를 보여줌으로써 더 적극적이고 쉽게 접근 가능한 해결책을 제공한다.
이번 기획전에 참가한 학생들은 모두 4학년으로 1학기에 학사 학위청구전을 마쳤다. 2학기에는 디자인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이 콘텐츠를 어떻게 즐길 수 있게 하느냐, 즉 어떻게 연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한다. 기획전은 항상 전체적인 모토를 가진다. 각 디자이너들은 이 모토에 맞게 작업(졸업 작품)을 보완하고 연출의 형태로 만들어 간다. 학생들은 기획 전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진행하면서 전시 기획의 역량을 키울 수 있다. 시각디자인학과에서 이러한 기획전을 하는 목적은 그래픽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컨텐츠를 만드는 디자이너를 육성하는 것이다.
신장개업이라는 기획전의 모토도 컨텐츠를 즐기는 방법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디자인이란 사용하기 위한 것인데 만질 수 없는 전시회는 아이러니라는 것이다. 기획팀은 사람들이 만지게 하고 쓰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으로 가게를 차리면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반적으로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사람들은 만져보고 써보고 구매를 결정한다. 학생들이 가게를 차려서 자기 상품을 소개하면 컨텐츠를 쉽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학생들이 사회에 선보이는 첫 상품을 소개한다는 점에 착안해 신장개업이라는 모토의 기획전이 탄생했다.
오프닝도 신장개업의 콘셉트를 그대로 가져와서 고사상을 차렸다. 진짜 돼지 머리를 올리는 대신에 돼지 저금통을 올리고 VIP가 돼지 콧구멍에 티켓을 꽂고 절을 하는 퍼포먼스로 기획전의 오프닝을 열었다. 실제 신장개업 분위기가 나도록 화환과 테이프 커팅식도 준비했다. 케이터링(catering)도 일반적으로 전시회장에서 사용하는 카나페 같은 서양 디저트 대신에 떡과 막걸리를 준비하는 등 신장개업의 디테일한 느낌까지도 잘 살렸다. 오프닝 겸 이벤트 퍼포먼스가 끝난 후에는 VIP를 대상으로 작업 설명을 하는 투어로 오프닝을 마무리지었다.
「신장개업」은 연남동 일대의 다양한 상점들과 함께 하는 기획전이다. 사전에 연남동 일대의 상점들과 협의가 되어서 메인 전시장인 동진시장 뿐만 아니라 연남동 곳곳의 상점들에도 「신장개업」전시가 배치되어 있다. 그야말로 연남동 전체가 전시장인 셈이다. 핫플레이스 연남동을 놀러 온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신장개업」을 접할 수 있다. 반대로 「신장개업」을 보러온 관람객들도 자연스럽게 연남동을 구경할 수 있다. 핫플레이스와 기획전을 동시에 즐기는 기묘한 경험이 관람 포인트이다.
전시는 상점의 모습으로 관람객이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한다. 사람들의 SNS 허세를 연출해주는 사진관도 있고 즉석에서 원하는 재료로 묘약을 만들어주는 약장수도 있다. 디자이너가 고안한 마녀사냥 게임을 즐길 수도 있고 원하는 글자를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서체로 뽑아주기도 한다. 31명의 사장님들이 운영하는 26개 상점의 체험형 전시를 차마 다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하나씩 체험하다보면 어느새 양손이 수북해질 지도 모른다. 하루 안에 26개 상점을 다 즐기려면 충분한 시간 계획이 필요할 것이다.
각 상점의 콘텐츠 경험과 참여를 통해 관람객과 디자이너가 서로 피드백을 주고 받는다. 학위청구전 작업 과정에서는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만 피드백이 오간다. 이 경우 디자이너가 생각했던 방향과 실제 사용자의 반응이 다를 수 있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체험형, 피드백형 전시는 콘텐츠 사용자의 의견을 듣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디자이너는 콘텐츠 사용자의 피드백을 수용해서 전시 후에 작업들을 퇴고하는 과정을 거친다. 퇴고를 거친 작업과 연출의 형태를 도록에 싣기 위해서 전시 후에 도록이 제작되어 판매될 예정이다. 「신장개업」은 전시장에서 도록 예약 구매 신청을 받고 있으며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도 신청이 가능하다.
▲박정원, 민재희 (평택대학교 4학년) / 김웅규, 류청 (서울특별시 마포구 편석동)
Q. 「신장개업」을 관람한 소감이 어떠신가요?
(박) 저희는 평택대학교 디자인학과 학생인데 졸업 전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통해서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기획전 「신장개업」을 알게 되었어요. 전시를 시장에서 연다는 발상이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찾아오게 되었어요. 막상 와보니까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마음에 들어요. 어떻게 보면 기존 전시의 틀을 깨버리는 것이잖아요. 소통도 많이 하는 것이 보이고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이런 전시 문화가 좀 더 많이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어요.
(김) 장모님과 처제와 와이프하고 같이 밥 먹으러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들어오게 되었는데요. 가끔씩 미술 전시회를 보러 다니곤 했었는데 아직 결혼하고는 한번도 못 가봤거든요. 그런데 우연치않게 전시회를 관람하게 되어서 좋았어요. 시장 골목 상권이 요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데 그런 것들이 잘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 좋았고 그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어요. 젊은 디자이너분들이 많으셔서 더 재밌게 구경한 것 같아요.
졸업 전시는 무언가 딱딱한 분위기가 있다. 지인이 참여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비전공자가 졸업 전시를 찾아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평소에도 전시회를 갈 일이 1년에 한번 될까 말까한 일반인이 대다수다. 졸업 전시를 간다고 해도 아는 사람 작품을 보고 칭찬의 말을 건네는 정도가 최선이다. 「신장개업」은 전공자와 지인들만 오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다. 홍대나 신촌에 놀러온 김에 잠시 친구들과 들러서 구경할 수도 있고, 연인끼리 데이트 코스로 거쳐가기에도 만족스럽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이 특별한 전시회를 꼭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