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계절이 단풍이 절정을 이룬 가을에서 초 겨울로 바뀔 때, 조형대 앞 흙냄새는 더욱 진해진다. 졸업전시회를 앞두고 마지막 혼을 불어넣는 21명의 흙쟁이들 때문이다. 그들의 수없는 물레질과 야간작업에 기다림이 더해지면 흙은 비로소 예술로 빚어진다. 흙쟁이들의 땀이 흠뻑 배인 흙냄새, 그 중에서도 최고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졸업전시회다. 지난 4년간 혹은 그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흙과 함께 지낸 흙쟁이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담아낸 그곳이 궁금하다.
3일 대학로의 목금토 갤러리에서 우리 국민대학교 도자공예학과 4학년 학생들의 졸업 작품들을 전시한 졸업전시회가 열렸다. 21명의 흙쟁이들 각자의 개성을 담은 작품 50점을 선보이는 이번 졸업 전시 행사는 11월 3일에서 8일까지 5일간 진행된다. 이번 도자공예학과의 졸업전시 포스터에 쓰여진 09101112라는 제목은 조금 의아하다. 알 수 없는 이 숫자들과 졸업전시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09101112라는 이번 졸업전시의 제목은 졸업생들의 입학년도와 다양함 속의 조화를 의미한다.
의미있는 제목인 만큼 이번 전시 역시 남다르다. 외부 업체에게 많은 돈을 지불하고 준비했던 이전의 졸업전시와는 다르게 사진촬영부터, 도록 디자인, 전시화DP까지 전시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 학생들 하나하나의 손길이 들어갔다. 그래서 인지 갤러리에 들어서면 어딘가에서 그들의 흙냄새가 느껴진다. 도록을 볼 때도 그렇다. 처음 도자기를 만졌던 1학년 때부터 4학년인 지금까지 흙쟁이들의 작업모습과 과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다. 학생들이 손수 꾸린 전시회라고 해서 서툰 느낌은 없다. 오히려 입가에 엄마미소가 피어나면서 왜인지 모를 편안함을 준다.
Q1. 졸업전시네요. 다른 전시회와는 느낌이 남다를 것 같아요.
시원섭섭하다고 해야할까요? 전에는 이 말이 너무 뻔한 문장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졸업전시를 하고 보니까 이 말이 현재 제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해주네요. 일년동안 힘들게 준비한 일이 잘 마무리돼서 기쁘지만 4년동안 함께 동고동락했던 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섭섭해요.
Q2. 졸업전시를 하기까지 굉장히 많은 작품들을 만들었을 것 같아요. 듣기로는 한 개의 작품을 만드려면 여러 개의 습작을 깨버린다고 하던데요.
보통 학기당 2-3개, 교내 동아리 활동까지하면 졸업전시까지 최소 50개정도를 다들 만드는 것 같아요. 이번 졸업작품도 전시작을 만들기까지 3번 정도 다시 만들었어요. 단순히 도자기를 만드는 시간을 따져보자면 오래 걸리지는 않아요. 근데, 도자기라는 게 구웠을 때 예측하기가 어렵거든요. 끝이라는 게 없는 거 같아요. 아무리 지금 작품이 마음에 들어도 다시 만들었을 때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많이 해보는 것 같아요.
겨울이 다가오는 문턱에서 대학로 및 전국의 갤러리에서는 많은 조형, 예술대학 학생들의 화려한 졸업전시가 열린다. 그럼에도 09101112 졸업전시가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바로 오프닝 세라믹쇼(Opening Ceramic Show) 때문이었다. 오프닝 세라믹 쇼는 도자기는 항상 놓고 감상해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세라믹웨어(wearable ceramics)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자 지난 10년도부터 시작된 도자공예학과만의 행사이다. 오프닝 세라믹 쇼에는 1, 2학년 후배들이 직접 모델로 나선다. 아마추어의 서툰 워킹이 여실히 느껴졌지만 4학년 선배들의 세라믹 웨어를 빛나게 하는 데에는 손색이 없었다. 아마도 선배들의 그 동안의 수고와 미래를 응원하는 예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취지에 맞게 이번 오프닝 세라믹쇼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 도자기도 패셔너블한 소품이 될 수 있음을 멋지게 보여주었고, 졸업전시의 시작을 화려하게 알렸다.
21명 흙쟁이들의 개성이 담긴 50점의 작품 역시 인상적이다. 당장이라도 내 식탁에 놓고 싶은 꽃빛 물든 그릇들 'Romantic Things'부터, 인류의 생활을 인공지능이 관리하는 삶을 상상하며, 기계에게 조종 당하는 꼭두각시를 표현한 'Cybernetic Domination', 일회용품의 기계적인 디테일과 매력을 내구성과 실용성을 갖춘 도자 식기로써 다시 표현한 '재활용 식탁', 거짓된 이상향을 현대미술로 표현한 '위선(僞善)'까지 다채롭다. 50여점 작품 각각에서 뿜어내는 매력들이 관람을 더욱 즐겁게 한다.
Q. 전시회에 어떻게 오시게 되었어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려요.
(이나라, 경희대학교 도예학과11) 저도 경희대학교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있다 보니까, 도자전시에 평소 관심이 많았었거든요. 근데 친구의 친구가 여기(국민대학교) 졸업생인데 이번에 졸업전시를 한다고 해서 관심이 있어서 같이 오게 되었어요. 저희 학교 졸업전시에는 엄청 큰 작품들이 많은데, 여기는 아기자기한 작품들이 많아서 재밌어요. 간소하지만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좋은 것 같아요.
Q. 졸업전시회를 하게 된 소감이 어떠신가요?
(손자환, 도자공예학과09) 제가 다른 친구들보다는 학교를 오래 다녀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래서 더 기쁘네요. 물론 아쉬운 점도 있지만,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서 작업했고,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작품으로 졸업전시를 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Q. 전시회 관람하신 소감이 어떠세요?
(김해순, 손자환母) 방금 한바퀴 쭉 돌아봤는데, 학생들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너무 잘 만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우리 아들이 만든 작품이 제일 예쁘고 눈에 들어오지만(웃음) 보면 기존의 도자기 전시회와 다른 색다른 작품들이 많아서 보는 재미도 있었고, 작품들 하나하나에서 젊음의 에너지를 얻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졸업전시는 대학생활 마무리임과 동시에 사회로 나가는 새로운 출발이기 때문에 21명의 흙쟁이들에게 단순한 전시회 의미 그 이상이다. 그래서 항상 졸업전시에는 그냥 전시회를 관람하고자 오는 관람객들보단, 지난 4년간의 그들의 노력을 축하해주는 발길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생긴 작은 문화가 있다. 누군가는 그 동안의 그들의 노력을 격려하며, 다른 누군가는 졸업을 축하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앞으로 놓인 그들의 미래를 응원하고자 작품들 아래에 작은 선물들을 놓는다. 이제는 작품아래에 놓인 선물들을 보는 것도 전시회를 더욱 더 풍성하게 하는 볼거리가 되었다. 오는 주말을 맞아 혹은 잠시 시간을 내어 졸업전시를 관람하고자 한다면, 작은 성의를 하나 준비해 내 마음을 움직인 작품에 살포시 놓아보자.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편지여도 좋고, 작은 초콜렛이어도 좋다. 작은 선물 하나가 전시회 관람을 더욱 더 즐겁게 해줄 것이다.
한 줌 흙으로 보여주는 흙쟁이들의 이야기를 대학로 목금토 갤러리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이번 도자공예학과의 졸업전시회는 오는 11월 9일에서부터 11월 16일까지 국민대학교 조형관 1층 조형갤러리에서도 만나 볼 수 있다.
2015년도 국민대학교 도자공예학과 졸업전시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