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그 사람을 찾습니다 #23] 공감할 수 있는 연기를 하는 배우, 한수림을 만나다
최원석 15.12.22 조회수 13385

 

현실 세상 속, 비현실적 존재가 만들어낸 인간적인 이야기가 있다. 바로 생계형 흡혈귀 가족의 모습을 그려낸 뮤지컬 <상자 속 흡혈귀>가 그것이다. 이 작품의 여주인공 아냐 역을 매력적으로 소화해낸 한수림 동문(예술대학 공연예술학부 연극영화 전공 09). 공감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그녀로부터 뮤지컬 <상자 속 흡혈귀>에 대한 내용과 배우로서 그녀가 걸어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한수림 동문은 국민대학교 연극영화과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중학교 때 뮤지컬 <그리스>를 보고 막연히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어서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특출한 것이 없는 저였는데, 다행히도 좋은 모습을 봐주셨는지 국민대학교 연극영화과에 합격할 수 있었어요. 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우면서 연극, 뮤지컬, 드라마, 영화의 뿌리는 같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앞으로 더욱더 많은 경험과 공부를 하면서,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 대학로 SH 아트홀에서 2015.10.23-2015.12.31 상영하는 뮤지컬 <상자 속 흡혈귀> 

 

현재 수림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뮤지컬 <상자 속 흡혈귀>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호화로웠던 과거를 그리워하며 하루 종일 TV에 빠져 사는 뱀파이어 엄마 ‘쏘냐’(진아라, 문혜원 분), 로맨틱한 사랑꾼이자 몽상가인 오빠 ‘바냐’(김도빈, 이지호 분), 갖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책임지는 소녀 가장이자 막내딸인 ‘아냐’(한수림 분). 이 세 명의 흡혈귀 가족이 겪는 이야기예요. 원래는 연극이 원작인데, 뮤지컬로 각색된 작품이에요. 그래서 음악, 춤과 함께 더욱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특히 <상자 속 흡혈귀>는 우리 사회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흡혈귀라는 비현실적인 존재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삶과 사랑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어요. ‘살아남기 위해’ 인간의 피를 빠는 흡혈귀와 ‘잘 살기 위해’ 흡혈귀의 피를 빠는 인간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인간성의 개념에 대해 그리고 인간답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실 수 있을 거예요. 

 

▲ 뮤지컬 <상자 속 흡혈귀>에서 현실적이고 강인한 막내딸 '아냐' 역을 맡은 한수림 동문

 

극중에서 여주인공 ‘아냐’ 역으로 등장하는데, 어떤 성격을 가진 캐릭터인가요?

아냐는 흡혈귀 가족의 막내딸인데, 굉장히 현실적이고 강인한 인물이에요. 막내딸이라는 점은 저랑 많이 닮았는데... 그 외 흡혈귀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러한 존재 자체가 상상 속에 등장하는 것이라, 누구도 실제로 본 적은 없잖아요? 그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모두 찾아봤는데, 각자 표현하고 있는 이미지가 달라 이해하기 쉽지 않았어요. 결국 작품에 맞는, 저만의 아냐라는 캐릭터를 새로 만들어야 했어요. 

 

작품 인물을 이해하고 연기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네요. 어떤 마음으로 연기를 하셨나요?

누가 구체적으로 아냐의 이미지를 요구하진 않았기 때문에, 저 스스로 ‘실제라면 이러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야생의 동물적 이미지요. 어쨌든 인간은 흡혈귀들에게는 음식이잖아요(웃음). 본능을 숨기고 살다가, ‘캬악!’ 하고 피를 빨아먹는 모습. 마약이 주사기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왔을 때의 기분, 그게 흡혈귀가 피를 마실 때의 느낌을 대입해보면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많이 했어요. 그게 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 학과 선후배와 함께 연극 스터디 그룹 '노나다'를 만들어 참가한 'H-스타 페스티벌'에서 금상 수상


연기라는 게 몸으로 부딪히며 하는 것이라 학과 생활도 남달랐겠어요.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나요?

작년에 학교선배, 후배들과 함께 ‘노나다’라는 연극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활동했어요. 학생들끼리 의기투합해 기존 연극을 재구성한 작품을 만들어 냈는데, 현대자동차그룹이 개최한 ‘H-스타 페스티벌’에 참가해 금상을 수상했어요. 전국의 쟁쟁한 연극영화과 학생들이 참여하는 무대인데, 저희끼리 똘똘 뭉쳐서 좋은 결과를 얻어내 뿌듯했죠. 우리 힘으로 ‘상을 꼭 받자!’,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 보여주자!’라고 생각하고 더욱 열심히 했어요. 수업이 다 끝난 후 새벽에 모여 연습하기도 하는 등 힘들었지만 좋은 자양분이 된 경험이었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교수님 혹은 수업을 통해 특별히 영향을 받은 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운이 좋은 것 같아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연기, 움직임, 노래, 호흡과 발성, 평론 등 각 수업에서 만난 교수님 한 분 한 분께 좋은 배움을 받고, 그만큼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제가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지금도 학교 교수님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많고, 용기를 얻어요.

특히 1학년에 했던 워크샵이 기억에 남아요. 러시아에서 오신 알렉세이 교수님의 연기 워크샵 수업을 들었거든요. 그때 교수님이 ‘수림, 아직은 모르겠지만 너는 굉장히 부드러우면서도 그 속에 강함이 있어. 나중에 알게 될 거야’라고 하셨는데... 사실 아직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새로운 교수님과 만날 때마다, 새로운 수업을 들을 때 마다 계속해서 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제 자신이 제일 잘 알거든요. 그래서 아직도 그 점을 채우고 싶어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많아요. 배우는 끊임없이 훈련해야 한다고 배웠어요.

 

▲ 연극 스터디 그룹 '노나다'의 멤버들이 모두 모여 찰칵 

 

수업이나 극단 활동을 하다보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신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중에서 혹시 롤모델이나 멘토가 있으신가요?

워낙 많은 교수님과 선배님들에게 도움을 받아서 꼽기가 쉽지 않아요(웃음). 학교 선배, 동기들에게도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요. 특히 최근에는 노나다 활동도 함께했던 07학번 선배인 김보정 언니가 많이 도와줬어요. 저보다 학과 선배이기도 하고, 데뷔도 일찍 했죠.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상자 속 흡혈귀의 경우, 다른 주연 배우들은 더블 캐스팅이지만, 저는 싱글 캐스팅이거든요. 매일매일 공연을 해야 하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언니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받고, 연기적으로 어려운 게 있으면 물어보고, 멘탈(정신)이 흔들릴 때마다 잡아줬어요. 독하게 혼내주기도 하구요. 연기도 잘해서 언니 연기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많이 배울 수 있어요. 옆에서 칭찬, 코멘트도 잘 해줘요. 

 

학교 밖에서 한 연기 활동에 대해서도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4학년 1학기가 시작할 무렵이었어요. 방향을 잡을 수 없어 마음만 조급해지는 시기였어요. 오디션사이트를 통해 오디션에 지원했지만, 아무 경력이 없어서 그런지 서류에서부터 다 떨어졌어요. 그러다 ‘CJ E&M 뮤지컬 액터스’ 오디션 공고를 보고 지원을 했는데, 서류 전형에 운 좋게 합격했어요. 사실 서류 지원은 일단 다 붙여준 느낌이 들었지만(웃음). 실기 오디션을 보게 됐고 다행히 합격할 수 있었어요. 아무래도 나이가 어렸던 것을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당시에 열정 하나는 정말 넘쳤거든요. 

CJ E&M 뮤지컬 액터스 단원으로 2년 동안 선배님들과 함께 트레이닝 받으며 배우로서 더욱 성장할 수 있었어요. 정신적,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었는데, 그 과정이 지나고 나니 ‘뭐든지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생겼고,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됐어요. 계약 기간이 끝나서 더 이상 소속이 아니지만, 2년 동안의 배움을 잘 기억하고 있어요. 지금은 김혜리 교수님의 '극단 ETS' 소속이에요. 뮤지컬뿐만 아니라 연극도 많이 해서 기본이 탄탄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 한수림 동문의 목표 중 하나를 이룰 수 있게 해준 뮤지컬 <상자 속 흡혈귀> 

 

올해도 슬슬 마무리가 되어 가는데, 한 해를 되돌아 보았을 때 스스로 뿌듯했던 일은 무엇인가요?

사실은 이번 년도에 이루고 싶은 것은 다 이뤘어요. 대극장 앙상블로 주로 참여를 했었는데, '소극장에서 주인공을 해보자' 라는 게 올해의 첫 번째 목표였어요. 2015 대구 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공연된 <지구 멸망 30일 전>이라는 작품에서 여자 주인공 역(오혜원 역)을 맡았어요. 그때 이미 첫 번째 소원을 이룬 거죠! 두 번째 소원은 포스터에 제 얼굴이 올라가는 것이었어요. 상자 속 흡혈귀의 포스터를 보면 아시겠죠? 이런 좋은 작품과 좋은 역할에 저를 믿고 선택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요. 

 

연기 생활을 하면서 힘들다고 느꼈던 점은 없었나요?

아직도 오디션을 보면 떨어질 때가 많아요. 처음엔 떨어질 때 마다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어요.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간절하니까요. 물론 앞으로도 오디션에 많이 떨어지겠죠. 그래도 이젠 울지 않아요. 배우라는 직업이 그런 직업이고, 저에게 맞는 작품은 꼭 될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신가요?

연기적으로는 관객들이 저의 연기를 보고 공감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아직 부족하지만 무대에서 항상 진심을 담아 얘기하려고 해요. 물론 그런 배우가 되기 위해 지금보다 노력해야겠죠?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어요(웃음).

 

▲ 무대에서 빛이 나는 한수림 동문

 

마지막으로 후배 혹은 뮤지컬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나는 정말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하면 좋겠어요. 학교 내에서 하는 작은 공연이라도 집중해서 해야 내공이 쌓이고 쌓여 학교를 벗어나서도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느꼈어요. 또, 많은 분들이 공연을 다양하게 즐겨보셨으면 좋겠어요. 드라마, 영화도 좋지만, 극장에서 즐기는 라이브만의 매력이 분명히 다르거든요. 모두들 연극을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열정으로 차근차근 배우로서의 목표를 이루어 가고 있는 한수림 동문. 그녀의 공연을 관람할 때는 무대를 압도하는 연기력, 공연장에 가득 울려 퍼지는 가창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공연장 밖에서 대화를 나눈 그녀는 선배, 후배, 가족을 생각하고 챙기는 아냐의 인간적인 모습과 영락없었다. 실력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한수림 동문의 행보가 궁금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