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국민*인이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의 생각을 키워나가는 시간, 국민*인 책다방에서 네 번째 손님 허태구(경영학부 12), 이희재(법학과 09)학생을 만나보았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과 한병철의 <피로사회>는 지금까지 우리가 바라보던 사회현실을 다른 시선으로 풀어 긍정에 대한 의심을 품게 하는 책이다. 자본주의와 철저한 공생 관계를 맺고 있는 긍정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친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두 권의 책의 공통점은 현대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과연 두 학생은 이 책을 어떻게 읽고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들어보자.
1. 비관은 무엇이고 낙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희재: 같은 현상도 생각하는 태도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은 가능성과 희망을 찾고,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은 문제점과 우울한 현상을 먼저 발견하죠. 낙관은 고난이 생기면 믿음과 감사함으로 접근한다면, 비관은 의심과 남 탓으로 접근한다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비관과 낙관이겠죠.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비관의 긍정적인 면도 보게 되었어요. 이순신장군도 천하가 태평한대 왜군이 쳐들어올 리가 없다는 다른 대신들의 낙관적인 태도 때문에 미치광이 취급을 받으셨죠.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예감했기에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잖아요. 결국 비관과 낙관, 두 가지를 좋은 것과 나쁜 것 이라고 이분화하여 구분할 수 없어요.
허태구: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비관과 낙관을 이야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컵에 물이 반이 남았을 경우 관점의 차이와 같다고 생각해요. 비관적인 사람은 ‘아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 라고 말하고, 낙관적인 사람은 ‘아직 물이 반이나 남았네.’ 라고 말하는 것처럼 같은 현상을 바라봐도 관점의 차이에 따라 비관과 낙관을 구분할 수 있죠. 인생을 밝게 보고, 앞으로의 일이 잘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말 그대로 낙관이고, 인생을 어둡게 보고, 앞으로의 일이 잘 안될 것으로 보는 것이 말 그대로 비관일 뿐, 둘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느껴요.
2. 비관주의는 삶에 대한 기대치 즉 행복에 대한 역치가 낮을 뿐이다. 낙관주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웬만큼 행복한 일이 있어도 별로 행복을 못 느낀다. 반면 비관주의 사고를 가진 사람은 삶에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도 작은 행복도 크게 느낄 수 있다. 우리의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긍정의 배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이희재: 두 권의 책을 읽고 나서 비관주의고 낙관주의고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라는 것이 가장 모순적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내가 더 행복을 많이 느끼기 위해서 비관주의 사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 생각해요. 늘어지고 싶을 때는 낙관주의적이게 생각도 했다가, 긴장해야 할 때에는 비관주의 사고로 세심하고 깊게 생각하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 가장 크게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며 낙관주의자인 척, 고뇌하는 비관주의자 인척, 그런 거짓된 모습이 행복을 극대화하는 가장 큰 방해물이라 생각해요.
허태구: 가끔은 긍정의 배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행복에 대한 높은 역치를 가진 낙관주의자들에게요. 낙관주의자들은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긍정의 힘을 맹신하잖아요. 암을 긍정적인 사고로 이겨낼 수 있다든지, 실패한 사람이 긍정적인 사고를 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든지 같은 허무맹랑한 소리로 말이에요. 물론, 긍정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긍정은 불안을 가장하기위한 자기 방어수단일 뿐, 실질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는 없어요. 따라서 긍정의 배신을 겪고, 긍정의 부정적인 힘을 직접 느껴본다면, 스스로가 부정을 긍정으로 극복했다는 생각에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겠죠.
3. ‘긍정’에 대해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의심을 품어 본 경험이 있는가.
이희재: 취업준비에 들어간 나에게 주변사람들이, “걱정할 것 없어”, “너라면 할 수 있어”, “넌, 금방 될 것 같아” 라는 말들을 해요. 하지만 이 말을 들을 때 마다 나는 사실 화가 나기도 해요. 물론 나를 위한다는 격려의 말들이겠지만, 당장 현실에 직시해야 하는 나에게는 긍정적인 격려가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독하게 마음먹어야 할 나에게, “그래, 나니깐 이정도만 해도 되겠지?”라고 자기만족을 하게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긍정적적인 말을 들어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보내요. 나의 다짐들이 흔들리지 않게요
허태구: 저는 대학생이 돼서 팀플을 했을 때가 떠오르네요. 지난 학기, 한 수업에서 팀을 구성해서 팀플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팀원들끼리 회식도 하고, 자주 만나다보니 너무 친해진 것이 문제였죠. 최종 발표일이 다가오면서 발표 자료를 만드는데, 다들 “우린 다 같이 열심히 했으니까, 아이디어들이 다 너무 좋다.” 등의 긍정적인 생각만을 내놓았어요. 최종 리허설을 할 때에도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식으로 너무 긍정에 빠져있었던 것 같아요. 그 결과, 점수는 좋게 받지 못했죠. 그때 당시, 너무 긍정만 내세우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구나하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4. 저자가 말하는 ‘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는가. 자신의 삶의 어떤 모습과 피로사회와 닮았는가.
이희재: 현대인은 피해자라는 말에 동의해요.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기 때문에 나도 그 사회에 묻혀가기 위해 그 규율을 따라가도록 채찍질할 수밖에 없어요. 오늘날 학생인권, 의무과목 철폐, 자기주도 학습, 개별성강조, 입학사정관제의 도입은 학생들을 입시지옥에서 해방시켜 자유로운 주체로 길러낸 것이 아니라 더욱 불투명한 경쟁, 끝없는 자신과의 "절대적 경쟁"으로 내 몬다고 생각해요.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간다는 구호는 학생들을 자신과 스스로 경쟁하는 자발적으로 착취하도록 만들었죠. 저도 대학만가면 다 될 거라는 자기합리화로 고3 을 버텼어요.
허태구: 저도 저자의 말에 동의해요. 현대인은 성과사회라는 자유롭지 못한 사회에 살면서, 스스로 노동하는 노예가 되는 노동사회를 만들고,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대인은 스스로 피로사회를 만드는 가해자인 동시에 그 사회에서 착취당하는 피해자인 셈이죠. 실제로 지난여름 방학만 돌아보더라도 나는 졸업하기 전에 많은 스펙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휴가와 휴식은 반납한 채, 끊임없이 대외 활동에 지원하고, 공모전에 참여했어요. 결국, 방학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스트레스성 위염만 얻고 말았죠. 남은 대학생활도, 나아가서 사회생활에서도 피로사회 속에 살게 되겠지만, 가끔의 깊은 심심함을 통해 스스로를 착취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를 해봐야겠어요.
5. 두 책을 읽고 자신에게 어떠한 생각의 변화가 있었는가?
이희재: “괜찮다, 할 수 있다, 아프니깐 청춘이다.”라는 힘들어도 참고 이겨내라는 말들만 듣다가 억지로 웃고 억지로 참지 않아도 이해해주는 사회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어요. 저는 사실 그동안 나 자신을 소개할 때 쾌활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묘사했어요. 하지만, 가끔은 긍정을 내려놓아야겠어요. 힘든 대로 표현하고 아파하고 고민하는 것도 나의 일부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람들의 이목을 의식하고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는데, 이제는 힘들 때는 힘든 티도 내고, 최악의 변수도 생각해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허태구: 먼저, 피로사회는 바쁘게 사는 것도 중요하고,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깊은 심심함을 통해 나 자신을 조금은 해방시켜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끔 도와주었어요. 또, 내 주변의 나처럼 맹목적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이러한 이야기를 전달해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긍정의 배신은 내가 <시크릿>, <긍정의 힘> 등을 읽으면서 맹목적으로 추구했던 낙관주의가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했고, 긍정에 대해 의구심도 생기더라고요. 앞으로는 긍정을 생각할 때, 긍정의 부정도 생각해야겠다는 좋은 깨달음을 얻었어요.
6. 책다방을 위해 책을 읽으면서 또 책다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땠는가.
이희재: 한 가지 책을 읽고 다른 사람과 느낀 점을 교환하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면서 책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책은 소통의 도구라고 하잖아요. 저자와 독자와의 소통이 되기도 하지만, 독자들 간의 소통도 이렇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어요.
허태구: 사실 비평서는 자주 읽는 편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책 읽기가 다소 어렵게 느껴졌지만, 책을 읽다보니 자기개발서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피로사회>나 <긍정의 배신> 같은 비평서는 맹목적인 전달일지라도 기존의 사고를 뒤집어놓는 내용을 통해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내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죠. 솔직히 말해서 자기개발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를 말만 번지르르하게 써놓은 것이 전부가 아닌가요. 이번 책다방을 통해 긍정에 대한 생각과 나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책다방’ 참으로 좋은 코너인 것 같아요.
“걸으면서 심심해하고 그런 심심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의 평정을 잃고 안절부절못하며 돌아다니거나 이런저런 다른 활동을 해볼 것이다. 하지만 심심한 것을 좀 더 잘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어쩌면 걷는 것 자체가 심심함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은 그로 하여금 완전히 새로운 움직임을 고안하도록 몰아갈 것이다." (피로사회 , p.33)
빠르고 바쁜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던 국민*인이 있다면 여유를 갖고 깊은 사색을 통해 지금까지 편견으로 굳어진 생각을 뒤집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면 긍정적인 단어 뒤에 숨겨진 부정적인 또 다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