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지나는 사람 구경이라도 하는 양 기웃거리며 고개 내민 처마들이 정겨운 삼청동 어느 골목길에 작은 플랜카드가 하나 걸렸다.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꼭 어린아이의 그것 같은 모습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와 올망졸망한 어린 동물들이 보인다. 그 옆으로는 커다란 수식이 적혀있다. 책, 그림, 이야기를 더해놓은 단순하고도 아리송한 식이다. 문득 궁금증이 인다. 아이처럼 작고 소박한 갤러리, 그리고 그 안의 작은 그림들이 옹기종기 모여 달큰한 온기를 뿜고 있는 창작그림책 원화전 '책+그림+이야기'를 찾아가보았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하얀 벽에 나란히 걸린 그림들이 눈에 들어온다. 생각만큼 작고, 생각보다 많은 그림들이다. 작품들이 제법 많은 것은 이번 전시회에 참가한 작가의 수가 총 9명이나 되는 까닭이다. 모두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다. 전시된 그림들은 그들이 지난 해 창작 그림책 일러스트 과목을 수강하며 만들어낸 것으로, 한 권의 동화책이기도 하다. 여러 장의 그림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묶여 책이 되는 것이다. 속의 일러스트는 물론이고 책의 이야기까지 작가들이 직접 지었다. 책 한 권이 온전히 한 사람에게서 나온 셈이다. 전시회의 제목이 납득되는 순간이다.
개구진 동화 속 주인공들처럼 작가들도 전시회를 준비하며 이것저것 궁리하고 소곤소곤 비밀스런 장난을 기획한 모양이다. 그림들 밑에는 제본까지 완벽히 마친 그림책이 각 두 권씩 놓여있다. 그림을 보다 이야기가 궁금해지면 언제든 그 자리에서 책을 펼쳐 읽을 수 있다. 출입문 쪽 아담한 탁자 위에는 갈빛의 종이가 수북이 쌓여있다. 이른바 '숨어있는 캐릭터 찾기' 질문지다. 관람객들이 그저 전시된 그림을 보고 지나가는 걸로 끝나지 않도록 일종의 놀이 장치를 만들어 둔 것이다. 전시장 곳곳에 숨은 동화책 캐릭터들을 찾아 적으면 소정의 상품을 제공한다. 구석구석 꼼꼼하게도 숨은 녀석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26일은 전시 첫 날인만큼 정성스레 준비한 다과와 함께 이벤트를 진행했다. 작가들은 저마다 자신이 쓰고 그린 책을 읽었다. 말소리를 따라 스크린엔 그림이 펼쳐졌다. 두런두런 모여서서 커다란 동화책을 함께 읽어나갔다. 십 분 내외의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두근거림을 애써 누르며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가는 작가들의 눈빛이 천장의 조명보다도 환히 빛났다. 전시회를 담당한 디자인대학원의 김수정 겸임교수는 "작년에 이어 어느덧 두 번째 전시입니다. 기성 작가도 해내기 어려운 일을 무사히 마쳐준 학생들이 더없이 기특하고 고마워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이 많아지길 바라며, 국민*인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에 충실하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해요." 라고 소감을 전했다.
신두희 학생은 본인이 지은 '오늘의 날씨 맑음'에 대해 "누구든 자신 없고 잘 하지 못하는 분야가 있기 마련이지만 이를 잘 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고, 경험을 쌓아 사람을 성장하게 하죠. 결국, 도전하기 위해 용기내면 분명 더 값진 것을 얻는다는 교훈을 주고 싶었어요."라며 작품 설명을 했다. 중국에서 온 양류 학생은 중국에서 문자가 없던 시대부터 구전되어 온 '산해경' 속의 기이한 존재로부터 영감을 얻어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아무티는 사람들과 다른 존재인 자신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스스로 가치를 찾아 떠나요. 저도 타국생활을 하는 만큼,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제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어요."라고 말하는 그녀로부터 아무티의 그림자가 살포시 드리웠다.
다음은 전시회에서 만나볼 수 있는 몇 점의 일러스트들이다. 하나같이 개성으로 가득한, 열정으로 그려낸 작품들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림책, 혹은 동화책이라면 어린이들이나 보는 책쯤으로 여기곤 할 것이다. 어린이들'이나' 보는 책이라는 것은 이미 알 만한 이야기라던가, 새로이 알아도 별 거 없을 이야기일 테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의 세계만큼 명쾌하고 올바른 것도 없다. '권선징악'이나 '고진감래'와 같은 너무나도 뻔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삶의 이치가 동화 속에 그대로 들어있다. 잠시 잊고 지냈던 그 당연한 이야기들을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만나러 가보는 건 어떨까. 다 자란 줄만 알았던 마음의 키가 기지개를 켜며 반 뼘은 더 자랄 것이다.
전시 정보
일 시 : 2015.1.26 ~ 2.1
장 소 : 갤러리 자작나무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1길 40-7)
전화번호 : 02-733-7944